이웃에 사는 셋째 형의 친구가 당시 당수 초단이었는데 유도유단자인 셋째형과 서로 제가 하는 무술이 최고라고 우겼다. 내 형은 유도는 일단 상대를 잡았다하면 업어치기로 띄워서 태질을 쳐서 죽인다고 자랑을 하였고, 형 친구는 당수는 유도가 잡아서 공중에 띄우면 날아가는 순간 옆차기 한방으로 골로 보낼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떨어지면서 공중재비로 살짝 내려앉으면 된다고 큰 소리를 쳤다. 어린 마음에 그런 기술이 맘에 들었다. 나는 최강의 당수를 배우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 후 당수가 권법으로, 태수도로 변하더니 1965년 여름에 태권도가 되었다. 나는 이 무술을 하면서 형들의 이야기가 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기까지 20년을 소모하였다. 나는 이종무술 유단자들과 대련(對鍊)하는 모임을 만들어서 어느 무술이 한방에 상대를 골로 보내는데 더 나은가를 연구했다. 또 스트리트 파이터로서 실습도 꽤나 했다. 나는 그 한방 때문에 특히 격파연습을 많이 했다. 그러나 나는 체격조건이 불리하지 않았지만 체력이 절정기였던 30대 초반까지 빨간 벽돌 2장, 기와 20장 이상을 깨어보지 못하였다. 나는 사람 손으로 잡고 있는 벽돌을 깨뜨리는, 소위 벽돌 공중격파를 즐겨했다. 이것은 스피드와 힘, 그리고 끊어 치는 기술이 조화를 이루어야 가능한 좀 고급기술이다. 컨디션이 나쁘거나 벽돌이 너무 단단하면 벽돌 대신 주먹이 깨지고 자존심도 망가진다. 그래서 언제나 벽돌 한 장 쯤은 공중에서 박살내는 진정한 위력을 갖고 싶었다. 그 마음만큼 맹렬하게 몸닦달을 했다. 그런데 우연히 건축공사장에서 벽돌공이 작은 망치로 가볍게 톡톡 쳐서 그 단단한 벽돌을 절반, 또는 3분의 1씩 쉽게, 너무나 쉽게 깨뜨리는 것을 보았다. 한참을 구경한 나는 작은 망치하나에 미치지 못하는 내 주먹의 실체를 깨달았다. 그리고 20여년을 쌔(혀)빠지게 주먹단련을 한 것이 너무나 허망하여 눈물이 다 나왔다. 또 사범이라는 자부심도 망치에 깨지는 벽돌처럼 여지없이 동강이 났으니 울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이후 나는 인간의 유한한 육체를 초월하는 무술을 찾아 다녔다. 공중에 떠다니는 이인이 있다고 해서 불원천리하고 찾아갔더니 공중부양은 그 사람 마음속의 헛것이었다. 어느 암자의 스님이 바위에 손자국을 찍어 두었다고 해서 찾아 갔더니 이것은 정으로 쫒은 가짜였다. 장풍으로 사람을 날려버린다는 도사를 만났더니 내 툭 불거진 주먹을 보고는 제가 먼저 날아가 버렸다. 그러다가 택견을 만났다. 송덕기라는 90대 노인이 보여주는 동작이었음에도 택견의 운동 원리는 참으로 절묘했다. 죽으라고 무술을 연마한 내 눈에 대뜸 그렇게 보였다. 그러나 택견을 배우면서 굼실대고, 능청대고, 우쭐대며, 으스대는 택견의 동작으로는 사람을 단방에 골로 보내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았다. 이른바 일격필살(一擊必殺)기가 아니었다. 실망스러웠다. 아니 절망을 느꼈다 그러나 한 가지, 내 마음을 꽉 붙든 것은 누천년 동안 우리 조상이 이를 숭상하고 보전 발전시켜 왔을 때는 반드시 어떤 이로움이 있었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이었다. 꽤 긴 시간을 고심하였고, 절망하지 않기 위해 고통과 아픔을 겪어야 했다. 어느 날. 열 살짜리 꼬마 제자가 물었다. 그 물음은 “이 세계에서 제일 강한 무술이 무엇인가요?”였다. 내가 이 꼬마 제자 나이 때부터 수십 년 동안 해답을 찾아다녔던 그 물음이었다. 그 꼬마가 기대한 정답은 당연히 ‘택견’이었을 것이 분명했다. 나도 그렇게 대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무술은 택견이다.” 이렇게. 그러나 나는 20년 이상 피나는 연마를 한 태권도 사범의 주먹이 벽돌공의 작은 망치에 비해 그 위력이 형편없다는 것을 아는 스승으로서, 정직해야 했다. 그래서 말했다. “맨주먹보다 망치가 강하다.” 그랬더니 녀석은 “망치보다는 긴 칼이 더 쎄요.” 라고 했다. 그렇다. 닛뽄도를 든 검도 유단자라고 해도 M-16자동소총 앞에서 꼬리를 안 내리고 어쩌랴. 그런 자동화기도 8mm전차포 한방이면 끝이다. 그런데 우리가 사이버게임처럼 TV를 통해 보았던 이라크전쟁의 미군 미사일의 위력은? 그 미사일에 중성자탄 하나를 장착한다면, 어떤 무술이 세계 최강일까? 모르기는 하되 꼬마 제자는 맨몸으로 치고받는 무술과 연장을 들고 하는 무술을 두고 어떤 게 더 ‘쎈가’ 비교하는 것이 어리석다는 것을 간단히 이해한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나는 내 몸을 살인병기로 만들려고 했다. 적어도 수족을 창과 칼과 도끼, 망치처럼 만들려고 했고, 무술이 그것을 가능하게 해줄 줄 알았다. 인류(人類)는 도구를 사용할 줄 아는 유인원의 한 종속이 수백만 년 동안 진화를 거듭한 끝에 새로 만들어 진 종(種)이다. 따라서 인류로 분류되기 이전부터 상당히 발달한 도구사용법, 즉 무술을 숙달하고 있었다. 인류는 먹잇감인 동물을 사냥하고, 사냥할 때는 맹수와 경합을 해야 했다. 또 보다 살기 좋은 터를 빼앗고, 또, 지키기 위해 인류들끼리 싸웠다. 상대를 죽여야 하는 사냥과 전투에서 무기는 절대적인 것이다. 무기의 효용성을 체험으로 알고 있는 인류는 보다 더 강력한 무기를 발명하고 그 사용법을 발달시켰다. 그 결과 인류의 개체 수는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서식역(棲息域)은 광범위해졌다. 사회적 동물인 인류는 분쟁의 해결방식으로서, 또, 집단내의 서열을 정하는 경쟁방법으로서 맨몸으로 싸우는 방식을 개발했다. 집단의 구성원 끼리 경쟁하면서 무기를 사용한다면 서로 다치거나 죽는다. 그러면 그 집단은 노동력과 전투력이 소실되어 자멸한다. 그래서 무기를 놓고 싸우게 되었다. 무기를 놓았다 하더라도 급소를 치고, 관절을 꺾고, 내장을 파열시키게 되면 결과는 역시 망하는 것이다. 무기를 사용 않는 것부터 이런저런 것을 자꾸 금지하였다. 규칙이 생기게 된 것이다. 규칙을 아래 싸우는 것을 경기라는 현대적 개념으로 이해해도 별문제 없을 터이다. 인류가 맨몸으로 싸우는 기술을 만들고 발달시킨 것은 살상이 목적이 아니었던 것이다. 가해성의 최소화를 담보한 가장 격렬한 경쟁방식, 즉 격투경기는 경기자를 자극하고 충동하여 자기향상의 에너지를 분발시킨다. 그것은 종을 보전하고 번성시키려는 본능이자 모든 생명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지혜이다. 우리조상도 예외 없이 혈통적 소질과 정서, 그리고 삶의 환경과 조건에 따라 다양한 경쟁방식을 발달시켜 왔다. 그것을 놀이라 하든, 경기라고 하든, 무술, 무예, 무도라고 하든, 아무래도 상관이 없다. 까마득한 옛날부터 택견은 그렇게 시작되었던 것이다. 무예신문 (http://mooye.net/) <저작권자 ⓒ 무예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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