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적으로 강대국은 하나같이 무력이 강한 나라였다. 물론 문화(문력)와 그것을 뒷받침하는 무력이 동시에 강해야 선진국이 되거나 세계를 리드하는 나라가 된다.
한국사를 보면 적어도 동아시아에서 주체성을 가졌던 시기는 고려시대, 몽골의 침입이 있기 전까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는 몽골의 부마국이 되었고, 그 후 개국한 조선은 나라 이름조차 명나라 황제로부터 하사받을 정도였다.
임진왜란 때에도 군대는 치안을 유지할 정도의 병력에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전 국토가 일본에 유린당하였을 정도였다. 이순신을 비롯한 장수들과 의병들의 활약으로 왜군을 물리치긴 했지만, 이미 나라는 쑥대밭이 되었다. 그 후에도 병자호란을 겪고, 구한말을 거쳐서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주변 강대국의 침략에 대항해서 나라를 지킬 힘이 없으면 결국 사대주의를 하거나 식민지가 될 수밖에 없다. 조선이 일제에 의해 병합되는 과정을 보면 변변한 저항이나 전쟁도 없이 그냥 나라를 넘겨준 꼴이었다. 우리는 지금도 일제에 의해 강제병합 당했다고 경술국치(1910년)를 말한다. 그러나 식민지가 된 상처와 기억은 아직도 우리를 힘들게 하고 있다.
무력이나 무예를 등한시하는 나라는 결코 큰 나라가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나라를 보전할 수 없는 것이 세계사의 진리이다. 지금도 한국인들은 무(武)를 등한시하고, 나라의 산업화를 이룬 군사정권 시절을 군사독재 혹은 파쇼라고 매도하기 일쑤다. 문치(文治)주의-사대주의는 지금도 민주화의 이름으로 역사의 주류가 되어 문화 전반에 흘러넘치고 있다.
문무는 항상 균형을 이루어야 튼튼한 나라라고 할 수 있다. 산업화를 이룬 군사 정권세력은 서서히 자신이 국가에 기여한 만큼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 산업화의 공은 잊혀가고 있다. 그나마 산업화과정에서 형성된 세계적 기업들이 한국의 체면을 세워주고 있다. 산업화는 무역전쟁, 수출 전쟁이었고, 그것을 한국의 군사정권은 잘 수행했던 것이다. 우리나라는 지금 오랜 문치주의-사대주의 전통의 도도한 흐름에 휩쓸려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무예 전통과 정신이 문화에 서서히 녹아들어 문화화되어야 진정한 무예문화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무예를 통해서, 무예를 익히면서 자연스럽게 그 나라의 전통과 예의범절을 체화하는 과정이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겐 필요하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라는 무예서, 무예경전을 가지고 있다.
필자는 「박정진의 무맥」을 세계일보에 2009년 2월 10일 처음 기고하면서, 약 1년간 연재한 적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17년 전의 일이다. 그 당시 한국 무예계의 내로라하는 인물들을 직접 만나 실기도 보고 인터뷰도 했다. 이 연재는 해방 이후 한국 무예계를 최초로 탐방하고 기록한 연재물이었다.
이러한 인연으로 청주세계무예마스터십 국제학술대회에 초청받아 기조 논문도 발표했다. 그 후 2020년 한국 무예계를 재정리하는 차원에서 『한국의 무예마스터들』을 출간했다. 많은 무예인으로부터 출판기념회를 베풀어주는 은혜를 입기도 했다.
그동안 무예계의 형편과 사정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특히 전통무예진흥법(2025년) 전부 개정안은 전통무예를 단순한 기술체계가 아니라 여러 세대에 걸쳐 전승되어 우리 문화의 고유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규정하였고, 시행규칙에 용어와 복식 등에 전통적 특성이 반영되도록 했다. 특히 전통무예에 대한 개념도 정리하기에 이르렀고, 이는 무예 정책의 중심축이 기술에서 역사와 문화로 이동했음을 보여준다.
한국 근대무예 1세대 무인은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 동란을 겪었다. 그 당시에는 전통무예라는 개념조차 없었고, 일본에서 배운 것과 중국 무술을 토대로 가르쳐 오다가 중국·일본식 기술에 전통무예라는 옷만 입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돌이켜보면 황폐한 무예 환경에서 이것도 무예 주체를 찾아가는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무예계가 오랜 세월 늪에 빠져 허우적댄 것은 창시무예의 역사 왜곡과 함께, 한 종목이 여러 단체로 분파한 것도 원인이다. 특히 한국의 합기도는 일본의 합기도와 기술체계가 다르면서도 일본이 사용한 합기도라는 이름을 그대로 차용하면서 지금까지 정체성에 대한 시비가 끊이지 않아 왔다. 정체성이란 역사성과 고유성이 함축된 개념이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그 기원의 역사는 지워지지 않는다.
무예인류학자로서 보면 태권도가 한국을 대표하는 무예가 되고, 올림픽 종목이 된 것은 큰 행운이었다고 볼 수 있다. 만일 태권도를 일본의 ‘당수도’라는 이름을 고집하였다면 오늘날의 태권도는 없었을 것이다. 물론 한국의 태권도는 ‘발차기’라는 기술을 접목하고 술기를 확대함으로써 주체화에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태권도 이외의 많은 한국의 무예들은 일본의 합기도를 모태로 한 것이 많다. 그러나 합기도라는 이름을 고수한다면, 일본의 소유권 주장이 없더라도,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한국의 무예가 되기 어려울 것이다.
무예문화도 창조적인 소수의 무예인이 나타나서 시대에 맞는 새로운 무예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성공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최근 주짓수가 붐을 일으키는 것을 보면서, 한국에도 실력이 출중한 무인들이 많을 텐데 왜 주짓수에 필적하는 무예를 만들어내지 못할까,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시대는 변했다. 방탄소년단(BTS)이 우리의 정체성이 담긴 한국어 가사로 된 노래를 불러 세계에 우뚝 섰다. 한국문화 붐이 세계적으로 확산일로에 있다. 한글을 비롯하여 K-팝, K-푸드, K-드라마, K-영화에 K-무예도 더욱 빛을 발할 것을 기대해본다. 우리 전통무예를 바탕으로 세계에 나서야만 무예문화의 주체화와 함께 세계화가 동시에 이루어질 것이다.
무예계의 숙원인 전통무예진흥법이 개정된 만큼 국가는 공정한 기준을 통해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고, 전통무예가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실효성 있는 지원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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