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스승의 날이 이어지며 우리는 자연스럽게 가정과 관계의 의미를 되새긴다. 그러나 떠오르는 질문이 하나 있다. 왜 아이들은 점점 예의를 모르게 되었을까. 그리고 그 책임은 과연 누구에게 있는가.
과거 농경사회에서 가정은 생활공동체이자 교육 공동체였다. 대가족 중심의 삶 속에서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어른을 공경하는 태도를 배웠다. 식사 자리 하나에도 질서가 있었고, 말 한마디에도 위계와 배려가 담겨 있었다.
조부모와 부모가 함께 살아가는 구조 속에서 아이들은 ‘말로 배우기’보다 ‘보며 배우는 교육’을 경험했다. 어른이 먼저 숟가락을 드는 모습, 부모가 조부모에게 공손히 대하는 태도, 가족 간의 역할과 책임을 다하는 일상 자체가 살아 있는 교과서였다.
그러나 산업의 발달로 사회 구조는 급격히 변했다. 도시화와 함께 핵가족이 일반화됐으며 가정은 점점 작아졌다. 조부모와 함께 사는 풍경은 드물어졌고, 부모 또한 생계와 경쟁 속에서 바쁜 일상을 살아가게 됐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이 접할 수 있는 ‘관계의 깊이’와 ‘예의의 현장’은 점점 줄어들었다. 예의를 가르칠 시간도, 보여줄 기회도 함께 사라진 것이다.
오늘날 아이들이 예의를 모른다는 지적은 쉽게 들을 수 있다. ‘인사를 하지 않는다’, ‘어른에게 무례하다’, ‘공동체 질서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뒤따른다. 그러나 이 문제를 아이들의 태도 문제로만 보는 것은 본질을 놓치는 일이다. 아이들은 본래 배우는 존재다. 그들이 무엇을 보고 자라왔는지가 곧 그들의 기준이 된다. 만약 가정 안에서 존중과 배려, 효의 모습을 충분히 경험하지 못했다면, 그것을 모르는 것은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핵심은 ‘보여주는 교육’의 부재다. 과거에는 부모가 자녀에게 효도를 ‘가르치기’보다 ‘실천하는 모습’을 통해 전달했다. 그러나 지금은 부모 세대 또한 그 경험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부모가 자신의 부모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배워보지 못한 채 성장했다면, 그 다음 세대에게 그것을 자연스럽게 전달하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결국 예의의 단절은 한 세대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 변화 속에서 누적된 결과이다.
그렇다면 해답은 무엇인가. 다시 대가족 시대로 돌아갈 수는 없다. 그러나 ‘관계 속에서 배우는 교육’을 회복하는 노력은 가능하다. 부모가 먼저 변해야 한다. 아이에게 인사를 강요하기 전에, 부모 스스로 어른에게 존중을 표현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가정 안에서 서로를 존중하는 언어를 사용하고, 작은 약속을 지키는 태도를 실천해야 한다. 예의는 훈계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반복되는 일상의 행동 속에서 형성된다.
또한 학교와 지역사회는 아이들이 다양한 세대와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이들은 지식 교육을 넘어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특히 무예나 스포츠, 단체 활동은 이러한 교육의 중요한 장이 될 수 있다. 규율과 존중, 질서를 몸으로 배우는 과정은 책으로는 대체할 수 없는 가치다.
가정의 달은 단순한 기념의 시간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뿌리를 돌아보는 시간이다. 아이들의 예의가 사라졌다면, 그것은 아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무엇을 보여주었고, 무엇을 놓쳤는지에 대한 질문이다.
말이 아닌 삶으로 가르칠 때, 예의는 다시 살아난다. 5월, 우리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모습을 보여줄 것인가를 먼저 고민해야 할 때다. <저작권자 ⓒ 무예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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