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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무예로 떠나는 세계여행 - 그리스 ‘판크라티온(Pankration)’

이상미 기자 | 기사입력 2026/04/07 [10:02]

[기획] 무예로 떠나는 세계여행 - 그리스 ‘판크라티온(Pankration)’

이상미 기자 | 입력 : 2026/04/07 [10:02]

▲ 사진=기원전 500년경 화가 테세우스의 작품으로 추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무예신문)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된 판크라티온(Pankration)은 인류 역사상 가장 거칠고도 원초적인 무예 중 하나이다. 이름부터 강렬하다. ‘모든’을 뜻하는 판(pan)과 ‘힘’을 의미하는 크라토스(kratos)가 합쳐진 말로, 말 그대로 신체의 모든 부위를 사용하는 격투를 의미한다. 인간의 신체 능력과 투지를 극한까지 끌어올리는 종목으로, 고대 사회에서 강인함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판크라티온의 기원은 기원전 2000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노예들의 난투에 가까웠던 싸움을 보다 체계적인 경기로 발전했다. 이러한 발전 과정 속에서 판크라티온은 오락을 넘어 군사 훈련과도 밀접한 관련을 맺으며 고대 그리스 사회 전반에 깊이 뿌리내렸다.

 

기원전 648년 제33회 고대 올림픽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면서 판크라티온은 전성기를 맞는다. 복싱과 레슬링이 결합된 형태로, 타격과 관절기, 조르기 등 거의 모든 기술이 허용됐다. 오늘날 기준으로 보면 극도로 위험한 경기였으며, 별다른 제한 없이 한쪽이 항복하거나 의식을 잃을 때까지 경기가 이어졌다. 경우에 따라 생명을 잃는 상황도 발생할 만큼 격렬한 승부가 펼쳐졌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경기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선수들이 서서 싸우는 아노(ano)와 상대가 쓰러진 이후에도 공격이 이어지는 카토(kato) 방식이다. 이는 현대 종합격투기(MMA)의 경기 구조와도 유사해, 판크라티온을 ‘종합격투기의 원형’으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일각에서는 판크라티온이 인도에 전해져 칼라리파야트로 발전하고, 이후 동양 무예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는 설도 제기된다.

 

▲ AI로 만든 이미지


고대 그리스 도자기와 벽화에는 판크라티온의 다양한 기술과 경기 장면이 생생하게 묘사돼 있으며, 호메로스의 서사시에서도 유사한 격투 장면이 등장한다. 이는 판크라티온이 당시 사회와 문화 속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음을 보여준다.

 

전설적인 인물로는 테오게네스가 있다. 그는 올림픽에서 복싱과 판크라티온을 모두 석권하며 약 1,400승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남긴 인물이다. 이스트미아와 네메아 대회에서도 연승을 이어간 그는 당대 최강의 격투가로 군림했고, 사후에는 고향에서 신처럼 숭배되었다고 전해진다.

 

한때 역사 속으로 사라졌던 판크라티온은 20세기 후반에 들어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1990년대 그리스의 연구자들과 격투가들이 고대 문헌과 유물을 토대로 기술과 규칙을 복원하면서 현대 스포츠로 부활했다.

 

▲ 사진=올림픽 성화가 채화되는 올림피아 헤라 신전. IOC


고대 올림픽이 열린 올림피아는 그리스 펠로폰네소스 반도 서쪽, 이오니아 해에서 약 16km 떨어진 곳으로 알페우스 강과 클라데우스 강이 만나는 지점 근처에 자리 잡고 있다. 오늘날 전 세계가 열광하는 스포츠 축제의 출발점이지만, 당시에는 최고신 제우스에게 바치는 제사의 성격이 더 강했다.

 

무너진 기둥과 부서진 돌들 사이를 걷다 보면, 한때 세계 7대 불가사의로 꼽혔던 제우스 신상이 이곳에 서 있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고요하다. 그러나 그 고요함 속에는 오히려 더 깊은 울림이 담겨 있다.

 

헤라 신전에서는 지금도 올림픽 성화 채화식이 이루어지며, 햇빛이 기둥 사이로 스며들며 과거와 현재를 이어준다. 태양의 빛으로 불을 붙이는 이 의식은 수천 년의 시간을 넘어 이어져 내려오며 인간의 도전과 평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198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 유적지는 인류가 경쟁과 화합을 통해 만들어낸 문화의 결정체이다.

 

수천 년의 시간을 넘어 다시 살아난 판크라티온은 인간의 본성과 한계를 상징하는 존재로 남아 있다. 지금도 그 이름은 묻는다. <계속>

이상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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