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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학 청주대 명예교수 “무예·체육지도자, 실전만큼 체계적인 이론 정립 중요하다”

조준우 기자 | 기사입력 2026/03/17 [14:45]

박종학 청주대 명예교수 “무예·체육지도자, 실전만큼 체계적인 이론 정립 중요하다”

조준우 기자 | 입력 : 2026/03/17 [14:45]

▲ 박종학 청주대학교 명예교수 (무예신문)


한국 최초의 유도 세계선수권대회 금메달리스트, 대한민국 체육상과 최우수선수상 수상자, 체육훈장 백마장과 맹호장을 받은 대한민국 유도계의 상징적인 인물인 박종학 청주대학교 명예교수를 무예신문이 만났다.

 

박 명예교수는 지도자로서 한국 유도를 이끌었고, 교육자로서 후학 양성에 평생을 바쳤다. 한국 대표팀은 물론 대만 대표팀까지 지도하며 국제무대에서도 활약했다. 또한 대만 국립체육대학교 교수로 활동하며 유도의 학문적 발전에도 기여했다. 스타 출신 엘리트 지도자인 박종학 명예교수가 전하는 무예와 유도 이야기를 들어본다.

 

▲유도 선수 박종학의 인생.

⇒ 내 유도 인생은 도전과 열정으로 가득했다고 말할 수 있다.

청주시 강서면 호암리 평범한 농가마을에서 태어난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동급생 친구들보다 체력이 좋고 운동에 대한 재능도 뛰어났다. 체육대회가 열리면 각종 종목에 대표선수로 출전하곤 했다. 대성중학교 3학년 때가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다. 충북 유도계의 대부 강형원(유도 10단) 선생을 만나면서 유도를 접하게 됐고 정식으로 유도를 배우기 시작했다.

 

늦게 시작한 탓에 다른 친구들에 비해 실력이 부족했지만 남달랐던 운동신경으로 금세 동료들을 따라잡았다. 청석고 3학년 때 전국춘계중·고유도연맹전 단체전 우승과 함께 고등부 최우수 선수로 뽑혔다. 유도선수로서 주목받기 시작한 때이다.

 

상무의 전신인 수경사 국군대표 유도부 소속이었던 1979년, 3·1절 유도대회에서 일반부 단체전 우승과 함께 개인 최우수선수상을 수상했다. 그때부터 유도 라이트급 국가대표로 발탁되어 활약하게 됐다.

 

그 후 오스트리아에서 열린 9회 세계군인유도선수권 대회에서 단체전과 개인전 -71kg급에서 우승, 2관왕을 차지했다. 그해 3.1절 기념 전국 유도대회 우승과 일반부 최우수선수상을 받으며 ‘박종학’이라는 이름을 국내·외에 알렸다.

1981년 네덜란드에서 열린 12회 세계유도선수권대회에서 한국 유도 사상 처음으로 금메달을 획득했다. 이후 대한민국 체육상, 대한민국 최우수선수상, 체육훈장 백마장·맹호장, 자랑스러운 충북도민상을 비롯한 각종 표창장을 받았다. 노력한 만큼 보답을 받은 인생이라는 생각이 든다.

 

▲ 유도 지도자, 교수로서의 삶

⇒ 스승인 강형원 선생님의 제의로 지도자로서 큰 뜻을 품고 모교인 청석고와 청주대에서 선수로 활동할 당시 익혔던 경험과 기술을 바탕으로 후배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1988년 국가대표 코치로 임명되면서 1989년도 유고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김병주 선수가 금메달, 1990년 북경 아시안게임에서 김병주, 정훈 선수가 금메달을 획득하는 데 일익을 담당했다. 이때 코치로서의 지도 능력을 인정받았다.

 

모교에서 가르쳤던 전기영·조인철 선수 같은 청출어람 제자들도 잊을 수 없다. 전기영 선수는 올림픽과 세계선수권대회에서 3연패를, 조인철 선수는 세계선수권대회 2연패의 위업을 이뤘다. 제자들이 세계를 제패하며 이름을 떨쳤을 때 그들을 가르친 스승으로서의 기쁨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 기쁨을 생각하면 언제나 가슴이 벅차오른다.

 

여러 스타 선수들을 발굴하고 가르쳤는데, 특히 고교 때 무명이었던 송대남 선수를 발굴해 청주대에서 가르쳐 국가대표 선수로 길러낸 건 더더욱 기억에 남는다. 송대남 선수가 런던 올림픽 유도-90kg에서 우승했을 때 꿈을 이뤘다고 생각했다.

 

지도자 활동은 국내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대만유도협회 지준안 전무이사로부터 대만 국가대표 총감독을 맡아 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아울러 대만 국립체육대학교에 교수로 와 달라는 제의도 받았다. 초청을 받고, 그곳에 머물면서 유도를 가르친 기간은 6년 6개월이다. 그 기간 대만 유도팀은 아시아 하위팀에서 상위팀으로 진입하는 성과를 올렸다.

 

그 후 모교인 청주대학교에서 체육교육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학생들에게 이론과 실기를 가르쳤다. 물론 유도부 선수들 지도도 병행했다.

 

 

▲기억에 남는 제자가 있다면.

⇒ 한 명만 정하라면 다른 많은 제자가 서운해할 것 같다(웃음).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송대남이 떠오른다. 경민고등학교 3학년인 송대남 선수를 눈여겨보고 있었다. 고1 때만 해도 유도를 곧 잘했던 송대남은 2학년 때부터 성적을 내지 못했다. 대학유도 ‘빅3’인 용인대, 한국체대, 한양대가 송대남을 데려갈 리 없었다. 유도를 그만둘 위기에 있었던 송대남을 청주대로 데려왔다.

 

부진의 원인만 알면 좋은 선수가 되리라고 믿었다. 내 생각이 맞았다. 대남이는 재능이 뛰어난 데다 성실하기도 이를 데 없었다. 당시 체력이 문제였는데, 훈련으로 극복시키기 위해 많이 다그쳤다. 이후 기술은 대학 때부터 국내 최고 수준이 됐다. 그때 내 지도를 잘 따라줬다.

 

송대남은 1999년 춘계전국대학 연맹전(66kg급), 2000년 전국체육대회(73kg급) 등 각종 대회에서 우승을 휩쓸었다. 올림픽과는 인연이 없었는데, 박 교수의 지원에 힘입어 런던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는 쾌거를 이뤘다. 물론 청주 청석고 감독 시절에 키운 ‘유도 천재’ 전기영 선수도 빼놓기 힘든 제자 중에 하나다. 전 선수에게는 내가 현역 시절 주특기로 삼았던 업어치기와 발기술을 집중적으로 가르쳤다.

 

▲무예인으로서의 역할은.

⇒ 먼저 세계무예마스터십대회 폐지가 너무 안타깝다. 이제는 유도 지도자로서 전 세계의 무예인들이 참가하는 세계무예마스터십대회와 같은 국제무예대회가 다시 생기기를 절실히 바라고 있다.

 

지금은 무예진흥에 대한 기초연구·응용연구 및 학제적 연구를 학회를 통해서 해나가고 있다. 현장에서의 선수들 지도도 중요하지만, 체육이나 무예를 전공하는 후배들을 위해서 이론적인 무장 역시 필요한 덕목이다.

 

실제로 선수들이 경기장 내에서 그때그때 판단하고 결정하고 움직여야 하는 경우가 많이 발생한다. 그럴 때 체득된 이론이 탄탄하다면 능숙하게 두뇌 플레이를 펼칠 수 있다. 무예·체육에 관한 실효적인 이론을 정립해 나가고자 한다.

 

▲향후 계획은 무엇인가.

⇒ 앞서 언급했듯이 유도와 무예, 체육을 망라하는 실전용 이론을 체계적이고 구체적으로 정립하는 데 매진하고자 한다. 그 형태가 영상이 될지 아니면 저술이 될지는 정하지 않았지만 나름대로 계획을 하고 있다. 물론 그간에 지도자, 교수로 살아온 시간 동안 정리를 해 온 자료와 경험들이 근간이 될 것이다.

 

아울러 유도 인프라 확대와 활성화를 위해서도 소임이 주어진다면 역할을 하고 싶다. 최근 유도 분야와 무예계 전반이 예전 같은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를 타개할 방안을 제시하고, 후배들을 이끌어 줄 수 있는 앞선 세대가 되고자 한다.

 

Profile

- 한국 최초 유도 세계선수권대회 금메달리스트.

- 청주대학교 교수·유도부 감독.

- 대한민국 유도 국가대표팀 감독.

- 대만 유도 국가대표팀 감독.

- 대만 국립체육대학교 교수.

조준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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