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운용의 마지막 비서] ④ 밀라노 동계올림픽의 환호... '포스트 김운용'은 이미 시작됐다
이탈리아 밀라노와 코르티나담페초의 차가운 설원 위로 뜨거운 함성이 울려 퍼졌다. 제25회 동계올림픽 현장에서 들려오는 우리 선수들의 낭보(朗報)를 접할 때마다, 나는 시대를 앞서갔던 한 거인의 뒷모습을 떠올린다.
이번 올림픽은 한국 스포츠 외교사에 있어 기념비적인 순간으로 기록될 것이다. 김재열 IOC 위원이 집행위원으로 선출되며 국제 무대에서의 영향력을 입증했고, ‘봅슬레이의 전설’ 원윤종 선수가 IOC 선수위원 선거에서 당당히 당선되었다는 소식은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지근거리에서 故 김운용 총재님을 보좌하며 세계를 누볐던 나로서는, 이 눈부신 성취가 결코 우연이 아님을 안다. 그것은 척박했던 한국 스포츠 외교의 토양에 스스로 거름이 되고자 했던 선구자의 고독한 도전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2001년 모스크바, 거인의 고독한 승부
2001년은 한국 스포츠 외교사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분기점이다. 21년간 세계 스포츠계를 호령했던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IOC 위원장이 퇴임하며, 세계 스포츠 권력의 정점을 향한 치열한 별들의 전쟁이 시작됐다. 그 중심에 김운용 총재님이 있었다.
당시 총재님은 사마란치 위원장 다음가는 실력자로 평가받았다. IOC 집행위원과 수석부위원장, 그리고 국제스포츠연맹총연합회(GAISF) 회장직을 수행하며 쌓아온 그의 위상은 가히 압도적이었다. 사람들은 그를 ‘스포츠 대통령’이라 불렀지만, 옆에서 지켜본 그의 일상은 화려한 수사보다 냉혹한 전략과 치열한 수 싸움의 연속이었다.
2001년 모스크바 IOC 총회. 선거 구도는 벨기에의 자크 로게와 김 총재님의 양강 체제로 굳어졌다. 초반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세계 각국의 지지세가 결집하며 당선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게 점쳐지기도 했다. 태권도를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입성시킨 그의 외교력은 이미 전설이었으니까.
그러나 선거의 세계는 비정했다. 라운드별 탈락 방식의 투표가 진행되자 유럽 위원들의 결속력은 거세졌고, 변화를 갈망하는 시대적 요구는 로게 후보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수많은 환호와 찬사 속에서도 늘 평정심을 유지하시던 분이었지만, 권력의 생리가 신의(信義)보다 구조와 세력에 의해 움직이는 순간을 목도하며 깊은 상념에 잠기시곤 했다. 총재님은 늘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외교는 포퓰리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실리와 확증으로 하는 것이다.” 화려한 수사보다 냉정한 계산을, 감정보다 구조를 읽는 통찰력을 강조하셨던 그 말씀의 무게를 나는 국제 무대의 수많은 현장에서 뼈저리게 실감했다. 비록 선거 결과는 아쉬움을 남겼지만, 아시아를 비롯한 수많은 위원이 끝까지 그를 지지했던 것은 표의 숫자를 넘어선 ‘인간 김운용’에 대한 신뢰의 방증이었다.
세대를 잇는 바통, 새로운 리더의 등장
과거의 도전이 남긴 흔적은 이제 새로운 세대에게 이어지고 있다. 나는 최근 현 대한체육회 수장인 유승민 회장을 보며 김 총재님이 가졌던 그 뜨거운 열망을 다시금 발견한다.
“낮은 자세로 소통하며 선수들을 위해 일하겠습니다.” 그 젊고 당찬 포부를 들으며 나는 직감했다. ‘이 리더는 분명 더 큰 무대에 설 사람이다’라고 말이다. 이후 그는 탁구협회 운영을 거쳐 2025년 1월, 역대 최연소 대한체육회장이라는 역사를 썼다.
도전은 멈추지 않는다
‘포스트 김운용’이라는 표현이 누군가에게는 성급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대는 늘 다음 주자를 요구한다. 2001년 모스크바에서의 도전이 실패로 기록되었을지언정, 그것은 패배가 아닌 한국 스포츠 외교의 거대한 자산으로 남았다.
밀라노의 설원 위에서 당당히 승전보를 전하는 선수들, 그리고 국제 무대의 의사결정권자로 거듭난 우리 위원들을 보며 나는 확신한다. 김운용 총재님이 뿌린 씨앗은 이미 거대한 숲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역사는 결과만이 아니라 그 과정에 담긴 도전의 무게로 평가받는다. 2001년의 그 뜨거웠던 여름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리고 우리는 묻는다. 다음 페이지를 써 내려갈 준비가 된 이는 누구인가. 도전은, 결코 끝나지 않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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