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 세계화 - 두 번째 이야기 시드니 올림픽과 김운용, 스포츠 외교의 정점에서 마주한 경이로움
국제무대를 태권도로 경험한 것은 고등학교 시절 참가했던 아시아 지역 친선경기가 전부였다. 그런 나에게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은 단순한 대회를 넘어 특별한 의미를 지닌 국제 스포츠 외교의 현장이었다. 당시 나는 이제 막 업무를 배우기 시작한 초보 비서였기에, 선발대가 아닌 후발대로 시드니에 도착했다. 김운용 총재님을 보좌하던 선발대 비서진은 IOC 본부 호텔에 머물렀지만, 나는 세계태권도연맹(WT) 본부 호텔에 홀로 머물게 되었다. 비록 화려한 본부와는 거리가 있었으나, 그 현장에 함께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당시의 나에게는 큰 축복이자 영광이었다.
직접 경험한 올림픽 현장은 상상 이상으로 엄격하고 철저했다. 테러와 안전사고에 대비한 보안 조치는 곳곳에서 반복적인 검문과 검색으로 이어졌고, 경기장 출입은 결코 자유롭지 않았다. 특히 회의장이나 경기장 출입에 필수적인 AD카드(Accreditation Card)를 발급받는 일은 사전 신청이 필수일 만큼 절차가 까다로웠으며, 신청하더라도 모든 구역의 출입이 허용되는 것은 아니었다.
사마란치와 김운용, 두 거인이 설계한 '남북 동시 입장'이라는 역사적 무대
시드니 올림픽은 여러 면에서 역사적인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우선 1994년 파리 IOC 총회에서 태권도가 만장일치로 정식종목에 채택된 이후 처음으로 치러진 올림픽이었다. 또한 개막식에서 남북 선수단이 동시에 입장하는 감동적인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남북 동시 입장은 개막 직전까지도 긴박한 조율이 이어졌던 쉽지 않은 결정이었으나, 사마란치 IOC 위원장의 큰 역할 덕분에 성사될 수 있었다. 대한체육회 역시 추석 연휴와 맞물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남북 선수단의 단복을 한국에서 직접 공수해 오는 등 심혈을 기울인 끝에 전 세계의 박수갈채를 이끌어냈다.
김 총재님은 평소 사마란치 위원장을 "진정한 친구이자 파트너"라고 평가하며, 태권도의 정식종목 채택과 남북 동시 입장이 그의 지원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임을 강조하곤 했다. 특히 태권도 체급 결정 과정에서의 일화는 유명하다. 사마란치 위원장이 처음 남녀 각 한 체급을 제안했을 때, 김 총재님은 "차라리 안 하는 게 낫겠다"며 강하게 버텼다. 이후 끈질긴 협상 끝에 남녀 각 4체급씩, 총 8개의 금메달 배정을 85대 0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다만 특정 국가 즉 한국의 메달 독점을 방지하기 위해 한 국가당 4개 체급만 출전하도록 제한을 뒀다.
태권도 경기 첫날, 사마란치 위원장과 키신저 IOC 명예위원이 경기장을 찾았을 때 김 총재님은 곁에서 직접 경기 규칙을 설명하며 열의를 보였다. 첫날 한국이 금메달을 놓치자 총재님의 기색이 어두워지기도 했으나, 사마란치 위원장은 오히려 축하 서한을 보내왔다. 당시 태권도가 한국의 지나친 메달 독점으로 인해 올림픽 무대에서 퇴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던 시기였기에, 첫날의 패배가 역설적으로 종목의 보편성을 증명하는 기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한국은 이후 금메달 3개를 획득하며 종주국의 자존심을 지켰고, 태권도는 성공적인 올림픽 데뷔를 마쳤다. (예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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