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를 시작하며’
인생에는 누구에게나 결정적인 ‘때’가 있다고 한다. 나 역시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시간을 돌아보며, 지금이 바로 그 기록을 남겨야 할 때임을 직감한다. 오롯이 혼자의 힘만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기에, 좋은 사람들과 더 나은 시대를 열어가는 것은 내 삶의 큰 뜻이 되었다.
내 생의 절반은 한국 스포츠계의 거목이자 멘토였던 한 분을 위해 존재했다. 당시 사람들은 그를 ‘100년에 한 번 나올 법한 인물’이라 했으나, 지금 돌아보면 ‘200년에 한 번’ 나올까 싶은 귀한 분이었다.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며 한국 스포츠의 백년대계를 내다본 그의 안목은 실로 대단했다. 이제 후학들에게 귀감이 될 그분의 비하인드 스토리, 그 한 편의 드라마를 시작해 보려고 한다.
태권도로 맺은 인연, 더 넓은 세계를 위하여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날을 또렷이 기억할 수는 없지만, 내 청춘을 바쳐 모셨고 이제는 고인이 되신 그분을 떠올리며 펜을 든다.
김운용. 사람들은 그를 ‘스포츠 대통령’이라 불렀다. 내 인생에서 이분을 빼놓고는 어떤 이야기도 완성될 수 없다. 대한태권도협회장, 세계태권도연맹 총재, 국기원장, 대한체육회장, 그리고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부위원장까지. 너무나 많은 직책을 역임하신 분이라 그 족적을 일일이 열거하는 것조차 쉽지 않을 정도다.
대학교 3학년 시절, 태권도 사범 자격연수 과정에서 처음으로 총재님을 직접 뵙게 되었다. 솔직히 당시의 나는 그분이 얼마나 위대한 분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내가 받아온 단증에 ‘국기원장 김운용’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음에도 그 무게를 깊이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다. 수많은 교육생 사이, 강연장 맨 뒷자리에서 총재님의 말씀을 들었다. 설명하기 어려운 묵직한 존재감이 느껴졌고, 보좌진에 둘러싸인 그분은 사진 한 장 찍기조차 어려워 보였다. 그날 나는 마음속으로 처음 생각했다. ‘아, 정말 대단하신 분이구나.’ 그것이 나의 솔직한 첫인상이었다.
영문도 모른 채 약속 장소로 나가자, 당시 총재님을 보좌하던 또 다른 선배가 기다리고 있었다. 긴장감이 엄습했다. 선배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이번에 총재님 수행비서를 뽑는데, 너를 추천하려 한다.” 말문이 막혔다. 선배는 이어 말했다. “지금 코치로 활동하는 것도 좋지만, 총재님을 모시는 자리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결코 쉬운 자리도 아니다. 시간이 없으니 학교 일은 빨리 정리해라.”
이력서를 제출하고 향한 대한체육회장실. 그 낯설고 긴장되는 공기 속에서 선배와 함께 회장실 문을 열었다. 김운용 총재님은 책상에 앉아 집무를 보고 계셨다. 선배가 나를 소개했다. “총재님, 이번에 수행비서로 들어올 서현석입니다.”
총재님은 책상 앞으로 나오시며 나를 한 번 훑어보시고는 미소를 지으셨다. “오… 그래. 키가 아주 크네. 앞으로 수고해.” 그분이 내민 손을 잡으며 나는 너무 긴장한 나머지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라는 말밖에는 하지 못했다. 그렇게 짧고 강렬했던 인사가 김운용 총재님과 나의 첫 인연이었다. 그리고 그 만남을 시작으로 수많은 이야기들이 내 삶 속에 깊이 새겨지게 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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