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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예신문, 지난 10년을 되돌아보다
무예인들의 목마름 해갈, 여기에 신속ㆍ정확 두 마리 토끼까지 잡다!
기사입력: 2012/10/08 [12:37]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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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발… Since 2002】 총 8페이지에 무예ㆍ체육계의 희망의 소리를 담다!
 
“잠든 무도인 깨어나고 깨인 무도인 자각하라!” 운동하는 친구들은 무식하다는 잘못된 선입견이 여전히 남아있던 지난 2002년 10월. ‘무예ㆍ체육을 바라보는 마음의 창’이라는 프레임을 갖춘 무예광장(武藝廣場, 무예신문 옛 제호)이 창간됐다. 당시 대한민국 무예언론의 새로운 역사이자, 첫 신호탄에 수많은 무예ㆍ체육인들 사이에서는 기대와 우려가 엇갈렸다. 무예ㆍ체육계의 새로운 이정표 제시 등의 기대가 컸던 반면, 일각에서는 “다음 호가 나올 수 있을까”라는 우려 또한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러한 기우는 얼마 뒤 보기 좋게 빗나갔음이 증명된다.

총 8페이지 분량, 비록 작은 시작이었지만, 그 속에는 “무도인 위한 눈과 입의 역할 담당하길”, “스포츠 문화 전파에 큰 공헌 기대 한다” 등의 바람들이 담겼다. 첫 인물초대석에서 메가폰을 잡은 최종표 발행인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가는 우리 전통무예… 국민체육으로 활성화시켜 나가야 한다”는 지론을 밝히며, 전통무예의 활로를 제시했다. 또한 여느 스포츠 신문에서 다루지 않았던 『대한민국 무술사』, 『무예의 정의』 등을 통해 비무예ㆍ비체육인들의 무예ㆍ체육에 대한 관심을 유도했다. 여기에 다양한 종목, 다양한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자, 대한용무도협회 김병천 회장(이하 당시 직함), 대한검도회 이종림 부회장, 한국태권도연맹 김태현 감사, 한국전통택견회 이현기 본부장, 대한본국검도협회 이재식 회장 등의 인터뷰가 게재됐다. 창간 5호부터는 보다 많은 목소리를 경청하고, 보다 많은 소식을 전하고자 지면을 기존의 8면에서 12면으로 대폭 증면했다.

 
【새로운시작… 2003】 무예광장→무예신문으로 제호변경, 새로운 시작을 알리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 무예인들에게 관심 가져라!” 당시 제16대 대통령에 선출됐던 故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검사와의 대화’라는 파격적인 토론을 제안ㆍ추진했다. “계급장 떼어놓고 토론을 해보자”는 오픈된 발성에 무예계도 기회를 달라는 내용이 2003년 1월 신년호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비록 이러한 제의는 실현되지 않았지만, 무예인들의 목소리를 대변한다는 무예광장의 창간 취지는 이 대목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이어서 2003년 2월호 역시 ‘노무현 대통령 취임에 거는 스포츠계 기대감’이라는 헤드라인 기사를 통해 무예ㆍ체육인들을 위한 정책 실현을 촉구했다. 이러한 가이드라인 제시는 대통령에 국한되지 않았다. 이창동 문화관광부장관에 대한 무예인들의 기대를 전하고(2003.3), 정부는 국위선양 무예인들에게 관심을 보여야 할 때(2003.5) 대구U대회 남북한 벽 넘어 세계화 잔치로 만들라(2003.8) 등의 기사를 타진했다.

또한 통권 4호임에도, 『2002년 무예계 5대 뉴스』를 한면 전체를 할애해 선정하는 등 언론 본연의 역할에도 충실하고자 노력했다. 2003년을 기해, 기존의 무예ㆍ체육인들을 벗어나 전업 주부, 학자, 일반인 등 다채로운 직업군과의 인터뷰를 시도했다. ‘그들만의 언론’에서 벗어나 ‘대중화된 무예 정론지’로서의 가치를 드높이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이후 무예광장은 창간 1주기를 맞아 “무예계 길을 밝히는 등대가 되고자 한다”는 새로운 비전 제시와 함께 ‘무예신문’으로 제호를 변경하며, 새로운 시작을 만천하에 알린다.

 
【정진… 2004】 합동취재단 구성, 주재기자단 신설 등 끊임없는 변화를 추구하다!

2004년은 말 그대로 정진을 위한 ‘무한 변화의 시기’였다. 1월 벽두새벽, 2004년 신년호를 통해 ㈜한창건설 강순창 회장의 취임을 알렸다. 이를 통해 무예신문은 무료배포의 한계를 뛰어넘을 경제적 기반을 다진다. 또한 합동취재반을 구동시키고, 1년간 총 4번의 디자인 레이아웃의 변경을 단행하는 등 정진(精進)을 위한 무한변화를 시도한다. 이에 대해 최종표 발행인은 “당시는 자리를 잡아가던 시절이었다”고 회고했다. 실제로 그랬다. 기존의 무예ㆍ체육 종목의 한계를 뛰어넘어, 태권도(4회, 2004.2, 2004.06, 2004.9, 2004,11)부터 합기도(2004.5), K-1(2004.12), 전통무예 화랑도(2004.11), 아테네 올림픽(2회, 2004.4, 2004.8), 남북 체육대회(2004.3) 등의 소식들이 1면을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2004년 3월을 기해, 제1기 무예신문 주재기자 신설 및 교육이 본격적으로 실시된다. 이를 통해 무예신문은 거미줄 네트워크의 첫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변화의 폭은 코너의 시설로 이어졌다. 건강 등의 카테고리를 추가해 음식부터, 건강 칼럼 등을 추가했고, 여행 섹션에서는 가볼만한 전국 방방곡곡의 新명소들이 게재됐다. 그런가하면, 문화면에서는 영화나, 서적 소개 및 명시들이 발표됐고, 연예면에서는 각종 이종격투기 록가수 마야 등이 소개됐다. 이러한 신생 코너들은 독자들의 피드백에 따라 수개월 내 폐지 및 신설되는 등 2004년 내내 계속해서 변화되는 모습이 이어진다. 이 밖에도 종합면을 통해 각종 무예ㆍ체육 관련 행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도록 제시했다.


【또한번의 과도기… 2005】무예신문 주최, 대한민국무예대상시상식 및 학술포럼을 개최하다.

통권 28호부터 39호가 발행됐던 2005년. 창간 3돌을 맞은 무예신문의 태동은 편집방향 등에서 무예정론지로서의 자리를 잡아가기 위한 또한번의 과도기적 양상을 보였다. 2005년 1년은 격동의 무예신문에 상당히 중요한 분수령 역할을 수행한다. 2005년 연말까지 다양하게 선보였던 카테고리들은 기업탐방, 교육, 문화, 현장을 찾아서, 뿌리를 찾아서, 뉴스브리핑 등으로 압축되며 자리를 잡아갔으며 기사에 대한 질도 보다 업그레이드된 측면이 역력했다. 특히 월간지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속보’가 게재됐는가 하면, 가까이는 일본부터 멀게는 스페인 등 해외 무예ㆍ체육계 소식들이 신문 지상을 장식하며 명실 공히 글로벌한 무예 언론으로서의 가치를 더해나가기 시작한다.

12월호에서는 자랑스러운 무예인을 선정, 이를 치하하고 만천하에 알리기 위한 첫 포문이 열린다. 『제1회 대한민국 무예대상시상식』이 무예신문 주최로 서울 코엑스 아트홀에서 개최된 것. 무예대상은 말 그대로 대상다운 면모를 과시했다. 첫 시상자로는 최홍만 선수가 첫번째 무예대상의 영예를 차지했다. 또한 『동양무예 고찰에 대한 학술포럼』에서는 허일웅, 염장호, 김이수, 이명찬. 강훈 교수와 김영철, 이재식 회장, 이시종 국회의원 등이 참석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이러한 소식은 1면부터 8, 9면 3면에 연이어 소개됐으며, 그 자체가 무예계에 신선한 충격으로 전해졌다. 건국 이래 최초의 무예ㆍ체육인들의 노벨상 수여가 시도됐다는 측면 등 그 여파는 결코 적지 않았다.

 
【개화… 2006】 명실공희 진정한 무예ㆍ체육계 오피니언 리더로 자리매김하다!

2006년은 2005년의 연장선적 의미가 강하되, 개화(開花)의 시기라 할 만큼 입지 및 인지도의 확대가 두드러진 한해였다. 『제2회 대한민국 무예대상 시상식』이 개최됐고, 독자들의 니즈를 반영한 ‘미녀 축구스타 해더미츠, 여성 액션 전문배우 1호 김효선, 택견계의 얼짱 이현기 감독, 당시 화제를 모았던 쌍검녀 윤자경 등이 무예신문을 통해 대중에 알려졌다.
 
이 기간, 무예계 주요 소식들은 빠짐없이 무예신문에 대서특필됐다. 당시 1면을 장식했던 기사들을 살펴보면 “이종격투기, 그 화려한 시작-태권도 등 국내 무술인들 대거 참여(2006.2)”, “세계 격투사들이 몰려온다! -6월 3일 잠실벌이 달아오른다(2006.6)”, “한국을 대표할 격투 강자를 찾아라! -데니스강과 임재석을 키워낸 스파릿 MC 대회(2006.8)”, “격투기 시장의 쓰나미가 밀려온다. -진원지는 WXF(2006.9)” 등 이종격투기에 대한 높은 인기를 고스란히 반영한 데 이어, 이종격투기의 인기 도화선 역할을 수행했다.


또한 “작은 도시 큰 체전 성공리에 폐막되다(2006.11)”를 통해 전국체전 소식을 빠르게 전했고, “국민생활체육협의회장에 이강두 의원 선출-최초, 공모제 통한 선출이라 의미 더해(2006.7)”, “1500년 전 화랑무예가 다시 살아난다(2006.5)”, “19개 단체 의기투합, 대한체육회 가맹 멀지 않았다! -대한합기도회 합기도인 염원 안고 출범!(2006.3)” 등의 기사가 단독보도 및 대서특필 됐다. 당시 김명곤 문화관광부 장관은 무예신문을 가리켜 “무예계 오피니언 리더”라고 명명했다.

 
【제2막 1장… 2007】 박차ㆍ강행ㆍ도약… 주마가편, 날카로운 분석을 더하다!

“이 거(신문) 뭡니까?”라는 항의 전화로 시작됐던 무예신문의 무료 우편 배송. 하지만 약 5년여가 흐르면서 이러한 반응은 “왜 이번 달 신문이 오지 않았는지 알고 싶다”는 내용으로 180도 완전히 달려졌다. 발행인 최종표 회장의 “소외된 무예ㆍ체육계에 참된 언론의 기능을 수행하리라”던 ‘최씨 옹고집’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 하지만 여기에서 고삐를 놓지 않았다. 달리는 말에 채찍질 하듯 2006년을 맞아 무예신문의 강점은 특화시키고, 2% 부족한 부분은 보완하는 데 집중했다. 특히 기사의 본질을 흐리지 않는 날카로운 분석과 객관적 보도가 눈길을 끌었다.

“경주시, 세계 무림촌 산업 무산(2007.2)”, “재중 태권도사범들, 위기의식 속 국기원 방문-중국협회 단증 심사는 한국사범 권익침해 우려 지적(2007.2)”, “택견ㆍ공수도, 대한체육회 정식 가맹 -합기도는 안건 상정도 안 돼(2007.3)”, “호국무예 태권도 지원 위한 제도적 장치 시급(2007.5)” “비리로 얼룩진 태권도계 이대로는 안 된다!-중국의 도전 등 태권도 위상 악화로 위기 날로 심화(2007.8)”, “태권도진흥법 국회 통과-국기원, 법정법인 전환ㆍ조직 및 인사체계 변화 불가피(2007.12)” 등의 기사들이 줄을 이었다. 이처럼 가감 없는 기사들은 무예ㆍ체육인들의 관심을 유도하고, 올바른 정책 발전의 도화선으로 연결됐다. 또한 1,000여개 전국 모범 도장을 중심으로 순찰대를 출범, 일찌감치 청소년 폭력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해결에 앞장서는 등 선지자적 모습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가치 창조… 2008】무예신문, 혼란에 빠진 위기의 무예계에 참된 빛이 되다!
 
“정론의 빛을 밝혀 드리겠습니다(2008년 발행인 신년인사말 中).” 신년사는 2008년 무예신문의 편집방향을 오롯이 담고 있다. 지난 2007년부터 수위를 높이기 시작한 무예신문의 올곧고 날선 비판과 객관성을 잃지 않은 보도는 무예ㆍ체육인들로부터 큰 호응을 이끌어냈다. 당시 무예ㆍ체육계는 혼돈의 양상이 뚜렷했다.

 “합기도, 드디어 스포츠경기 될 길 열렸다!(2008.2)”, “국민생활체육협의회 신임회장 선출 무산 -대의원들, 단독추천 홍문표 후보 부결시켜(2008.3)”, “명분 없는 파벌 싸움에 태권도가 무너진다- 내부갈등으로 태권도 이미지 날로 악화(2008.4)”, “국기원 정관 수정 또 무산 -이사회 사퇴 및 임원 결격사유 조항이 핵심 쟁점(2008.12)” 등 무예ㆍ체육계의 소식을 신속ㆍ정확하게 담아냈다. 물론 비판 수위만 높인 것은 아니다. “세계태권도지도자 총집결 -부산서 베이징 올림픽 대비한 국제적 교류 가져(2008.7)”. “해동검도, 무에서 유를 창조한 진화, 그리고 세계화(2008.12)” “무예진흥과 무술올림픽 창건(2008.9)” 등 올바른 방향성에 대한 가속도는 오히려 높여갔다. 이 기간, 연재기사도 봇물을 이뤘다. “태권도 역사 기술의 중요성(2007.3~2008.7)”, “신이  가르쳐 준 맨몸의 역사-택견의 역사(2008.8~2010.12) 등을 필두로, 각종 연재 칼럼 및 연간 심층기사가 독자들로부터 호응을 얻었다. 
 

【혼란 종결자… 2009】새 역사 창조, 새로운 희망으로 위기에 종지부를 찍다!

발전은 혼란을 동반한다. 무예ㆍ체육계 역시 예외는 아니다. 새로운 정책이 입안되고, 예산 투입이 가시화됐으나 이에 대한 조사가 병행되면서 혼탁이 심화됐다. 이 시점을 기해 무예신문은 올바른 가이드라인 제시에 집중했다. 전통무예진흥법 시행을 앞두고 무예계의 헛된 혼란을 줄이기 위해 국내 주요 정치인들을 만나 관련법의 의미와 한계점, 방향 및 미래가치 등에 대해 집중적으로 살펴봤다.
 
“무예계 이제는 단합할 시점이다 -정책과 방안 개발해 정부에 제안하라!(정병국 의원 2009.1)” “세계와 미래를 보고 준비해야 할 때 -국회에서 예산의 효율적 집행과 지원을 위해 노력(정병헌 의원 2009.2)”,  “전통무예진흥법 실질적인 동의가 필요하다 -무예의 정신과 원형 보전하는 가운데 대중화 추구해야(천정배 의원 2009.5)”, “21세기는 문화가 국가운명을 좌우한다 -무예는 전 국민이 참여할 수 있는 생활스포츠로 개발돼야(서갑원 의원 2009.7)”, “무예계 발전, 전통무예진흥회에 답 있다(이시종 의원, 2009.11)” 등이 그것. 또한 시의성도 놓치지 않았다. 무예ㆍ체육 언론 사상 최초로 시사만평을 게재, 신문으로서의 가치를 더했으며, 무예신문 주최로 합기도 통합을 위한 대토론회 개최 및 『제4회 대한민국 무예대상 시삭식』도 거행했다. 


【성숙기 도래… 2010】무예인들의 목마름 해갈, 여기에 신속ㆍ정확 두 마리 토끼까지 잡다!
 
이 기간, 무예신문은 백년대게를 위한 본격적인 성숙기에 돌입한다. 무예신문 최초로 설문조사를 통한 통계기사가 게재되기 시작하는 등, 실질적인 무예ㆍ체육인들의 목소리를 반영했다. 또한 이슈와 헤드라인, 메인뉴스와 티커 등으로 분류된 일목요연한 뉴스 체계는 중요기사부터 가십에 이르기까지 독자중심의 가독성을 갖춰나갔다. 더불어 『인생극장』은 무예원로 및 체육계 대가들의 파란만장했던 인생사를 다큐멘터리 형식의 활자로 담아 큰 호응을 이끌어냈다. 이 밖에도 각종 코너에 삽화가 게재됐고 요리 및 문화, 세계의 전통무예 등의 카테고리가 멀티 섹션으로 부활하기도 했다.
 
특히 『무예포커스』는 무예신문의 다크호스로 “문체부, 국기원에 법정법인 지연시 ‘국기원 명칭 사용 말라’ 통보(2010.2)”, “국기원, 탄원서 제출 이어 100만 태권도인 서명운동 전개(2010.2)”, “체육공단 생활체육 사업, 또다시 선정 논란(2010.2)”, “국기원ㆍ문체부 파워게임 제2라운드 본격화(2010.3)”, “경찰청 가산점 제도에 검도 동호인들 뿔났다(2010.3)”, “합기도 총연맹 진실공방, 불참으로 결국 무산(2010.7)”, “문체부, 3010년 전통무예 관련 예산 2억원 고작(2010.6)”. “주최하지도 않았다는 데 주최측으로 기재된 이상한 공청회 자료집 -나영일 교수 ‘무예단체들의 오해일 뿐’ 주장(2010.5)” 등 무예신문만의 편집방향을 완성시켜 나갔다.

 
【비상… 2011】 무예신문, 날개를 달다! 진정한 의미의 무예정론지로 ‘우뚝’
 
적잖은 위기 앞에 세계화와 대중화, 가치화라는 3대 비전. 이를 향해 새로움을 창출하고 수많은 도전과 위압에도 불구 무예정론지로서의 목표점을 잃지 않았던 무예신문의 2011년. 이에 대해 최종표 발행인은 ‘비상의 한해’라고 정의내렸다. 빈 말이 아니다. “한국무술 총연합회 수장 사퇴, 좌초 위기(2011.4)”, “국기원, 새해 벽두부터 내유외환에 휘청(2011.2)”, “문체부, 전통무예 토론회… 갈길 멀다 ‘중론’(2011.1)”, “원류적통자 논란 국회 상정… 전문가들 부정적(2011.5)” “스포츠바우처, 내년 7만명 규모로 확대(2011.8)” 등의 단독보도들은 무예신문의 완성도를 더해 나갔다. 여기에 무예신문 주최로 개최된 “합기도 우리 무예인가” 등의 포럼(2011.6)을 필두로 “USA오픈 엘리트 태권도 대회 집중 해부(2011.7)” 등 세계화에 대한 고삐와 전문성에 대한 메스에도 힘을 가했다.
 
또한 디지털 시대를 넘어선 무한접속의 커넥티드(Connected) 시대에 발맞춰 무예신문 웹진(www.mooye.net)의 뉴스레터를 강화하고 트위터와 페이스북 및 무예신문 QR코드 완성, 여기에 영어 및 중국어, 일본어,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등 다국어 변역 시스템도 탑재,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내 손안의 무예신문’ 시대를 열었다. 무예ㆍ체육계 변화의 중심, 그 가운데 늘 무예신문이 있었다.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무예신문 (http://mooye.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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