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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견사 탐구] 수박(手搏)과 택견의 상관관계 소론
기사입력: 2019/04/04 [14:18] 최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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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前 서울대학교 스포츠과학연구소 연구원, 무예연구가 김영만     ©무예신문

앞서 수박은 고려에서도 천대를 받았다고 언급하였다. 그리고 훨씬 이전부터 행해온 수박(手搏)이 사서(史書)에 드러나지 않은 것은 무신의 난(武臣의 亂) 때문이며 그 이전의 기록이 없다는 것은 별반 기록할 만한 가치의 대상이 아니었다는 것을 언급했다.

 

이후 역성혁명(易姓革命, a dynastic revolution)이 일어난 조선 초기에는 이전과 달리 어느 정도 대접을 받아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 1410년 태종 10년부터 1467년 세조 13년까지 57년간 관련기사가 나올 정도로 주목을 받았다.

 

민속 문화 가운데 특히 체기(體技)는 단시간에 만들어져 전승되는 경우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성혁명을 이룬 조선 초기는 무(武)에 대한 관심이 급증한 시기로 성행한 당시의 계층은 주로 사서를 살펴보면 시대는 달라도 신분의 귀천(貴賤), 승속(僧俗)을 막론하고 수박이 성행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한다. 역성혁명이 일어나 정권은 바뀌었지만 백성들은 바뀐 게 아니었다는 의미이다. 특히 조선 초기에는 일반 백성들의 가장 손쉬운 신분상승의 방법으로 수박과 수박희를 무재(武宰)에서 선보임으로써 선군(選軍)으로 선발되었다. 이러한 동기부여는 당연히 민중화, 대중화에 기여하였다. 역성혁명으로 조선으로 나라는 바뀌었지만 백성은 바뀌지 않았듯이 조선의 백성들은 여전히 수박으로 돈내기를 즐겨하였다.

 

다만 독립운동가 신채호가 저술한 《조선상고사(朝鮮上古史)》(1948)에 수박에 관한 기록을 보면, ‘송도의 수박이 곧 선배경기의 일부분이니, 수박이 지나에 들어가 권법이 되고, 일본에 건너가 유도가 되고, 조선에는 이조에서 무풍을 천시한 이래로 그 자취가 거의 전멸하니라’고 하였다. 조선이 자리를 잡고 숭유(崇儒)와 주자학(朱子學)이 지배하는 계급사회가 되면서 신분의 귀천과 승속을 막론하고 수박을 통해 신분상승이 이루어지는 폐단(弊端)을 막기 위해 도리어 수박이라는 용어를 입 밖에 꺼내는 것을 꺼리는 계기가 되었다. 쉽게 풀어 쓰자면 중국 명나라의 엄격한 법률사상이라는 대명률을 도입한 조선에서 주먹을 잘 쓴다고 양반이 된다는 사실을 도저히 용납하기 어려운 사회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다.

 

그 증거 중에 하나로 수박을 사용한 용례(用例)는 거의 줄어들었으며 대부분 일반명사로 한정되어 사용되었다. 그나마 전투에서 사용된 경우 금산전투에서 적수박전(赤手搏戰), 문집류에서의 도수박전(徒手搏戰)이 고작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수박이나 택견은 오랜 세월 동안 돈내기 등에 즐겨 이용될 정도로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다. 즉 사서에서는 시기적으로 매우 제한된 무예처럼 기록되어 있으나 실제는 저간에 깊숙이 퍼져 있는 기층무예이기도 했다.

 

수박이라는 용어가 기록에서 거의 사라질 무렵 이번에는 기층문화에서 부정적인 수박이라는 용어 대신 사용되고 있던 ‘탁견’이라는 순수 언문으로 된 용어가 자연스레 드러나게 되었다.

 

실제로 택견에 관한 기록은 매우 드물지만 단지 기록으로 나타나지 않을 뿐 조선말 외국인들의 여러 기록에서 보여주듯이 전문 싸움꾼들 사이에서는 돈내기의 수단으로까지 성행했던 무예였다. 즉 단편적인 기록만 보더라도 고려에서 조선말까지 기층문화로써 면면히 이어온 것이다.

 

역사학자 신채호는 《조선상고사(朝鮮上古史)》(1948)에서 조선말기의 “송도수박은 고구려 선배의 유풍이다.”라고 기록하고, 최남선은 《조선상식문답(朝鮮常識問答)》(1946)에 “수박은 본래 무예의 하나였으나 지금은 아동의 유희가 되었다”고 하였으며, 《재물보(才物譜)》에 “수박은 탁견과 같다”고 하였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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