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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 편] 오키나와 가라테

김명수 | 기사입력 2007/03/31 [00:00]

[태권도 편] 오키나와 가라테

김명수 | 입력 : 2007/03/31 [00:00]
▲ 前 한양대(교수 김명수) 
일본열도 최담터 섬 오키나와
1945년 일본과 미국 간에 가장 치열하게 전투가 벌어졌던 일본열도 최남단 활모양으로 길게 늘어진 섬들이 오키나와제도이다. 현대의 오키나와는 일본의 행복과 번영, 그리고 안전을 지키기 위해 바쳐진 희생양이었다. 이 같은 역사의 상흔은 오키나와 사람들의 가슴속에 지금도 아픔으로 남아 있다.

유구제도(琉球諸島)는 규슈(九州) 남서쪽 650km 지점부터 타이완 북단까지 펼쳐진 군도로 나세이(南西)제도라고도 하며 유구 사람들은 오키나와(沖繩)라고 부른다. 오키나와는 유구(琉球)라는 독립국가로 14세기 후반부터 동아시아 무대에 등장하고, 15~6세기에는 명(明), 조선, 일본, 동남아시아를 연결하는 중계무역을 통해 번영을 누렸던 해상왕국이었다. 그 후 에도(江戶)시대 사츠마(薩摩)항의 오키나와 침략과 메이지(明治)초의 19세기말엽 유구(류큐:琉球) 처분에 의해 오키나와가 일본의 영토에 강제로 편입되었다.

오키나와데(가라데:空手)
중국 진나라 조충(祖沖)이 쓴 술이기(述異記:B.C. 2697)에서 치우(蚩尤)라는 사람이 지나(支那)지방에서 각저(角抵)라는 무술을 사용하였던 것으로 기록이 되어있다.(吳文忠:1979) 또한‘지금부터 약1400년 전 위(魏)나라 정광년(正光年)에 남인도 향지국(香至國)의 셋째왕자 달마대사(達磨大師)가 중국하남성의 소림사에서 역근경(易筋經)이라는 강력한 신체단련법과 세수경(洗髓經)이라는 정신 단련법을 가르쳐 권법의 시초를 이루었다’(祝嶺制獻:1970)고 하였다. 그 후 특히 소림사에서 승려들이 권법을 수련하여 무술의 체계적인 발전을 시켜 널리 보급되었다 한다.

오키나와 역사를 보면 600년 전 3산(北山 中山 南山)의 군웅할거시대에 중산(中山)의 성주 쇼유우지(尙邑志1422-1439)는 무력으로 오키나와를 통일시키었다. 서기 1440년경에는 시마스요시히라(島津義久)가 오키나와를 정복 이후 무기제작 및 소지 금지를 명함에 따라 강력하게 무기의 사용을 금지시켰기 때문에 섬 주민들은 자신의 안전과 종족보호를 위한 도수공권기술(空手)을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한다. 이것은 당시의 권법을 조직적으로 적용한 것으로 공격방어의 기술을 독자적으로 형성하고 수련하였고, 또한 당ㆍ송 시대(618 - 1279)문화를 조선시대 오키나와에 많은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일본인은 외래문화를 그저 수용하는데서 끝내지 않고 그들 나름대로 변형시키고 발전시켰다. 일본은 한자를 받아들임으로써 대륙의 유교문화를 생활 속에 도입할 수 있었으며, 불교를 받아들임으로써 찬란한 일본문화의 꽃을 피울 수 있었다. 일본에 한자가 전해진 것은 15대 오진시대에 백제의 왕인에 의해서 이며, 불교가 전파된 것은 신라에 의해서로 우리(한국)를 통한 문물의 전달이 된 것이다. 그리고 오키나와에는 우리와 비슷한 풍습이 많다. 그 예를 하나를 든다면 제주도의 옛 풍습과 같은 오키나와에 후루라는 변소 겸 돼지우리로 사용하였든 것 등을 볼 수 있다.

오늘날 오키나와데(空手)의 동작이 중국의 어느 무술과 비슷한 점을 알기 어려우며, 아마도 조선시대 오키나와와 조선의 많은 교류를 통하여 우리의 무예가 전파되었을 것을 추측하고 공수(空手)의 기법에 어떠한 지도가 있었는지는 연구대상이다.

오키나와에서 오키나와데(空手)가 번창하여 쇼우다이오우(尙泰王 1848 - ?)시대에는 많은 명인들이 나왔으며,(祝嶺制獻:1970) 명치시대(明治 1868-1912) 초기부터 여러 당수술(唐手術)의 명인들이 알려지고 일본 본토에 보급하게 되었다.

가라테(空手) 수련은 수련도장을 신성시하여 불당(佛堂)에서와 같이 경건한 분위기 속에서 자타를 같이하고 겸허한 마음으로 선행하는 근본을 실천하여 정의롭게 행동하여야 한다는 교육을 시켰다. 이들 공수도의 명인들은 공수를 수련하여 얻어지는 기술과 체력 그리고 정신과 예술성을 인류사회 이익과 발전에 공헌하는 것이 공수도 수련의 주목적으로 강조하면서 지도하였는데, 기술보다는 정신적인 면을 중요시하는 인간행동을 바르게 변화시키는데 두었다. 그리고 인간의 사회생활을 건전하게 하도록 하며 인류사회 발전에 공헌하도록 교육을 하였다.

오키나와테(空手)와 태권도
대정말기(大正末期)에서 소화초기(昭和初期)에는 후나고시기진(船越義珍), 모도베아사모도(本部朝基), 미야기조준(宮城長順), 마부니다가가즈(摩文仁賢和), 갸무도모노리(喜屋武朝德), 도오야마히로다가(遠山寬賢), 우에시마산노스게(上島三之助) 등의 당수의 명인들에 의하여 일본의 관동(關東)과 관서(關西)지역의 중심도시에 가라테(空手道)의 지도 보급이 본격화되었다. 당시의 권법은 기술 기초가 불교사상을 내용으로 육성된 것으로 일본의 무도 역시 불도를 보호하려는 승병과 같이 무예수련을 하였으며, 동양적인 사상을 바탕으로 발전하였다.

현재의 태권도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한국태권도 창시자들을 보면 청도관의 창설자 이원국과 송무관 창설자 노병직은 후나고시도장에서 수련하였으며, 조선연무관창설자 전상섭ㆍ윤쾌병은 마부니의 도장에서 수련, YMCA권법부 창설자 윤병인 역시 일본유학당시 가라테 수련을 하였고, 경도(京都)에서 최홍희가 유학당시 당수(空手道)를 수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황기는 만주 등지에서 중국의 십팔기법과 당수를 배워서 청도관과 기술교류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재 초창기에 관(館)을 창설하였든 분들 중 유일하게 송무관 창설하신 노병직 선생님만이 미국에서 건강하게 생존하고 계시다.

다음은 무도의 개념과 사상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무예신문 (http://mooye.net/)
김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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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ㅋㅋㅋㅋㅋ 2012/08/03 [16:41] 수정 | 삭제
  • 백학권을 봐봤자 백학권의 백학은 백의 민족에서 전승 되었기 때문에 백학권이었다 라고 할 인간들임... 국내 무예판에서 일본나 중국 정부 수준이상의 역사 날조는 일상이니 이제는 기대도 안합니다 ㅡㅡ;
  • 허허 2012/02/22 [15:05] 수정 | 삭제
  • 중국의 백학권 교본이라도 좀 구해서 보시길. 왜 가라데가 당수라 불렸었는지 알수 있을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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