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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숙 시인 ‘먹감나무는 알고 있다’

강민숙 시인 | 기사입력 2026/08/12 [16:41]

강민숙 시인 ‘먹감나무는 알고 있다’

강민숙 시인 | 입력 : 2026/08/12 [16:41]

▲ 사진=독립기념관 (무예신문)


- 우키시마호 사건에 부쳐

 

조선 땅에 태어났지만 

내 나라가 아니라고 했어.

아버지 어머니가 일본 말을 하며

태극기 아닌 일장기가 내 조국의 국기라 했지

대동아 공영을 내걸고

조선을 꿀꺽 삼키고 중국까지 먹어야 한다며

일왕을 위해 목숨을 초개와 같이 바치라고 했지

 

빡빡 머리를 밀고

동네 어른들이 있는 자리에서 

대일본제국전쟁터로 나가는 것을 

영광으로 여기라며

잔치를 벌여, 몰아넣은 곳이 

바로 현해탄 건너 아오모리 중노동 현장이었지

 

단무지 한 조각에 주먹밥으로 허기를 달래며

곡괭이로 탄을 찍어 내리라며 

그들은 채찍 들고 눈을 부라렸지

누가 알기나 했을까.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질 줄을

어느 날 갑자기 

우리를 고국으로 데려다주겠다며 

우리 식구 다섯 명과 일만 명을 태우고 

1945년 8월 22일 부산항으로 간다고 했지 

 

고향 집에 팔월이 오면

먹감나무 밑으로 옥잠화가 하얗게 피어나고 

감나무의 감은 햇살에 반들거리고  

집 울타리로 빙 둘러있는 탱자나무는

탱자가 초롱 같은 눈망울로 반짝이고 있겠지

참, 울타리 밑 심어놓은 봉선화 맨드라미 나팔꽃 넝쿨은

그대로 있을지 몰라.

 

그런데 그때였어.

배 안에서 폭발음과 함께 

어머니와 누이는 순식간에 

시꺼먼 기름을 벌컥 마시고

뱉어내기도 전에 또 들이켜면서

아니다, 이건 아니라고 외쳤지만

이미 일본인들은 다 도망가 버렸고 

배는 두 동강이 난 채 쩍 갈라져

시꺼먼 기름이 습격하듯 

얼굴에 검은 비닐봉지를 일제히 씌워 버렸어   

그래서 사람들은 애초에 나라 잃은 것이 잘못이라며

차라리 눈감자고 했지

더 왜놈이 없는 저세상으로 돌아간 거야

해당화 핀 향기를 따라서

 

몇 해였을까 그해 겨울, 

마당 앞에 서 있는 먹감나무가 흰옷으로 갈아입던 날

아버지는 채 눈을 감지 못하고 

먹감나무 아래 축 늘어져 있었고 

하나 남은 형마저 날이 갈수록 

멀쩡한 하늘에 삿대질하다, 실없이 비실비실 웃다가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어.

 

이제 나는 꼭 알고 싶어

그날의 우키시마호의 사건과 진실을.

그리고 내 어머니와 내 누이가

먹감나무에 감이 주렁주렁 열린 것을 

꼭 보게 해줄 거야.

 

강민숙 시인

전북 부안 출생. 동국대 문예창작과 석사. 명지대 문예창작학과 박사학위. 1992년 등단, 아동문학상 허난설헌문학상, 매월당문학상, 서울문학상 수상.

 

시집 「노을 속에 당신을 묻고」, 「그대 바다에 섬으로 떠서」, 「꽃은 바람을 탓하지 않는다」, 「둥지는 없다」, 「채석강을 읽다」, 「녹두꽃은 지지 않는다」 외 10여 권의 저서.

 

전 「동강문학」 발행인 겸 주간, 도서출판 「생각이 크는 나무」 대표. 부안군 동학농민혁명 운영위원회 부위원장, 부안군 지역 경제발전 특별위원회 위원, 한국작가회 이사, 한국민족예술단체총연합 대변인, 아이클라 문예창작원.

강민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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