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이 펼쳐진 초원, 말발굽 소리가 울려 퍼지는 대지 위에서 거대한 체구의 선수들이 서로를 밀고 당긴다. 모래판도, 링도 없다. 오직 하늘과 초원만이 경기장이다. 몽골 ‘부흐(Bökh)’는 유목민의 삶과 역사가 그대로 담긴 몽골의 상징적인 전통무예다.
부흐는 몽골어로 '레슬링'을 뜻한다. 특히 매년 7월 열리는 나담축제에서 말타기, 활쏘기와 함께 3대 경연 종목으로 펼쳐진다. 대회에서 거둔 승수와 성적에 따라 ‘나친’, ‘아르슬란‘ ’다르항 아바르가‘ 등의 칭호가 주어진다. 이는 몽골 남성들에게 평생의 명예로 여겨진다. 나담축제는 유목민 문화와 전통적 가치를 인정받아 2010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됐다.
부흐의 역사는 수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몽골 바얀홍고르 지역의 고대 동굴벽화에는 레슬링 장면이 남아 있으며, 흉노 제국과 몽골 제국 시기의 기록 속에서도 부흐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몽골 제국 시절에는 지역 축제의 핵심 경기였으며, 이후 만주 왕조 시대에는 만주족과 몽골족 선수들이 정기적으로 대회를 열리기도 했다.
부흐는 경기 방식부터 독특하다. 손바닥이나 무릎, 상체 등 발바닥을 제외한 신체 어느 부위라도 먼저 땅에 닿으면 패배한다. 한국 씨름처럼 샅바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일본 스모처럼 정해진 경기장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광활한 초원 위에서 경계선 없이 경기가 펼쳐진다. 체급 제한과 시간 제한도 없다. 상대를 넘어뜨리기 위해 다리 걸기와 메치기, 밀기와 당기기 등 100가지가 넘는 기술이 사용된다.
부흐 선수들의 복장도 몽골 문화의 상징이다. 상의인 ‘조독’은 가슴 부분이 완전히 열려 있는 긴소매 조끼 형태다. 전설에 따르면 과거 한 여성이 남장을 하고 대회에 참가해 모든 남성을 꺾자, 이후 여성 참가를 구분하기 위해 가슴이 열린 복장이 만들어졌다고 전해진다. 짧은 반바지 형태의 ‘슈닥’, 전통 장화 ‘구탈’도 부흐 선수들의 대표적인 차림이다
경기 전후 선수들이 양팔을 넓게 벌리고 추는 독특한 춤도 눈길을 끈다. 이를 ‘데베흐’라고 하며, 초원의 맹수인 매와 독수리의 날갯짓을 형상화한 의식이다. 이는 힘과 용맹함을 드러내는 동시에 자연과 조상에게 경의를 표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최근에는 넷플릭스 예능 ‘피지컬: 아시아’에 출연한 몽골팀 리더 어르헹바야르 바야르사이항이 부흐 챔피언 출신으로 알려지며 세계적인 관심을 끌기도 했다.
몽골 여행의 가장 큰 매력은 끝없이 펼쳐진 자연이다. 도시의 화려함보다 초원과 하늘, 그리고 유목 문화가 여행의 중심이 된다. 부흐가 초원 위에서 탄생한 이유 역시 이러한 자연환경과 깊게 연결되어 있다.
고비사막은 몽골을 대표하는 대자연의 상징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모래언덕과 붉은 절벽, 광활한 황야는 압도적인 풍경을 만든다. 특히 해 질 무렵 붉게 물드는 사막 풍경은 몽골 여행의 백미로 꼽힌다.
부흐는 몽골인의 역사이자 자부심이며, 초원에서 살아온 유목민 정신 그 자체다. 광활한 자연 속에서 펼쳐지는 힘의 대결과 전통 의식은 여행자들에게 몽골이라는 나라를 가장 강렬하게 이해할 수 있는 경험을 선사한다. <계속> <저작권자 ⓒ 무예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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