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선 태권도장 관장이다. 현장 지도자로서 사명감을 갖고, 제자들에게 무예 정신과 인성을 함께 가르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요즘 태권도 도장들을 보고 있으면 씁쓸한 마음이 먼저 든다.
얼마 전 한 태권도 관장이 “1년 8개월간 태권도를 수련하고, 1품 4급까지 취득한 제자가 있었는데, 돌연 유도 도장으로 옮겨갔다”라고 내게 말했다. 도장을 그만두는 것이야 선택의 문제인데 왜 고민인지 의아했다. 그 관장이 말하길 “그 제자가 몇 개월 후 다른 태권도장에 입문하더니 2개월여 만에 2품 심사 안내문을 받았다”는 것이다.
국기원 2품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2년의 수련 기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수련생은 실질적으로 계산했을 때 1년 9개월여밖에 수련하지 않은 셈이다. 공식 기준으로 보면 2달 반의 수련이 부족한 상태다. 그런데도 2품 심사 대상자로 접수됐다는 점이 의아하다.
이런 사례는 비일비재(非一非再)하다. 한 수련생은 3품을 따고 다니던 도장을 그만뒀다. 그런데 몇 년 후 4품으로 승단했다. 다른 도장에서 열심히 수련해 승단한 것이 아니라, 아는 지인을 통해 몇 년 동안 수련한 것처럼 만들어 승단했다는 것이다. 이런 일들은 경제 여건이 나빠지고, 수련생들이 줄어들면서 더욱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관장들끼리 만나면 서로 하소연하기 바쁘다고들 한다.
문제는 시·도태권도협회에서도 이런 일에 대해서 법적으로 제재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형식상으로는 분명히 요건이 충족되지 않았지만, 제도를 악용하거나 규정을 느슨하게 적용하면, 마땅하고 정확한 법이 없으니 제재를 할 수가 없다. 즉 승품‧단을 태권도 관장들의 양심에 맡길 수밖에 없다는 게 현실이다.
무예는 단순히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수련을 통해 인성을 가르치고, 도(道)를 교육하는 일이다. 태권도장은 아이들이 몸과 마음을 가다듬게 하고, 인내와 예절을 배우는 교육의 장이다. 그런데 경제적 수익에 매몰되어 수련 기간을 무시하고, 형식적인 절차만 맞추려는 태도가 과연 태권도장의 본질에 부합하는 것인지 묻고 싶다.
이러한 상황을 방지하기 위한 명확한 제도와 기준이 필요하다. 단지 ‘법이 없어서 어쩔 수 없다’라는 말로 넘기기에는 태권도의 정신이 퇴색되고, 교육의 본질이 흔들릴 우려가 크다.
태권도가 단순한 승급의 수단이 아닌 삶의 품격과 인격을 함께 길러주는 무예로 자리 잡기를 간절히 바란다. 국기원은 물론 시·도태권도협회들이 문제를 심도 있게 논의하고, 정확한 수련 기간 관리와 심사 기준 강화 등의 제도 개선이 이루어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태권도 교육의 본질이 과연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방향이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해보자. <저작권자 ⓒ 무예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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