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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발끝에 채이는 블랙홀] 24-1. 살고 싶다, 살리고 싶다

신상성 소설가 (용인대 명예교수)

신상성 소설가 | 기사입력 2023/05/12 [18:12]

[웹소설-발끝에 채이는 블랙홀] 24-1. 살고 싶다, 살리고 싶다

신상성 소설가 (용인대 명예교수)

신상성 소설가 | 입력 : 2023/05/12 [18:12]

  © 무예신문


점심 때쯤 연한 감색 지붕의 거대한 벨루치아 왕궁이 보였다.

이 왕국도 독일계 게르만족 계열인 것 같다.

감색 지붕에 허연 벽 그리고 집 내부 구조물 그대로 나무들이 동화같이 그려져 있다.

“야, 이거 우리 집에 몇 달 만에 오는 거야? 나도 보통 말괄량이가 아니넹”

“겨우, 보름도 안 되었는데 무신 몇 달이냐? 하마가 방귀 뀌는 소리냐, 너도 카레나 같이 뻥치는 건 알아줘야 해” 

“이 등신아, 내가 너하고 육갑 떠는 시간만 해도 보름이 넘었잖아?”

“그리구?”

“그리구, 그동안 할리우드와 하와이 그리고 미얀마를 한 바퀴 돌았찌렁, 거의 두 달 반이넹” 

 

“이 왕궁구역부터는 너 쌧바닥 조심혀, 니캉내캉 이제부터 혼인하는 사이가 됐으니까”

“공주마마! 라구 예의도 엄격하게 갖추어 불러야 해”

“무신 얼어 죽을 예의냐? 내가 은제니 신랑 하겠다고 했냐?” 

“이제 이 왕궁 안에서는 유엔 총장이 와도 밖으로 못 나가”

뿌시식, 드론은 부드럽게 왕궁 뒤뜰에 안착했다.

어린애 회전목마에서 내리듯 그미가 먼저 가뿐하게 내렸다.

멀리서 분홍빛 행주치마를 입은 여인 등 일단의 가족들이 두 손을 크게 흔들며 달려왔다.

 

그러나 코리칸은 잠시 주저했다.

오늘 아침부터 핸드폰에 계속된 SOS를 무시해 왔다.

그런데 강종한 스승의 분노에 찬 얼굴이 나타나자 얼떨결에 귀에 댔다.

호랑이해에 호랑이 같은 두 눈알이 핸드폰에 꽉 차게 으르렁대었다. 

으으흥?

아버지까지 돌아가신 이후, 코리칸은 이 세상 누구의 말도 귓구멍에 안 집어넣었다.

그러나 강 관장 눈과 마주치자 오줌을 쌀 뻔했다.

“토 달지 말고, 무주로 와!”

평생 화를 잘 안 내는 강 관장님에게 무슨 일일까?

 


오드리 헵번 같은 눈동자의 여인이 하얀 장갑을 낀 긴 손을 내밀었다.

나는 얼른 예의 갖추어 무릎을 살짝 굽히며 정중하게 첫인사를 했다.

유럽식 인사다.

많은 태권도 국제대회에 출전하면서 그 나라 문화와 풍습을 유튜브 등에서 사전에 공부하곤 했다.

공부라기보다 해당 국가 역사와 전통을 비행기 안에서 잠깐씩 읽어보고 그 거리를 다니면 더욱 재미가 있었다. 

 

“How do you do!”

치치와나의 십여 명 남매들이 나를 에워싸며 BTS 최근 히트곡을 합창했다. 

헐, 한류가 이런 오지 조그만 왕국에까지 번지다니?

넓은 뜰을 앞장서서 달려나가는 꼬마 동생들은 오징어게임을 하면서 풀밭을 뒹굴기도 했다.

사운드 오브 뮤직 영화장면같이 평화롭고 안락한 언덕이다.

 

“아임 쏘리 쏘리”

나는 잠시 양해를 구하고 뒤돌아 스승의 핸드폰을 받았다.

그냥 SOS가 아니다. 

“왕비 마마님, 아무래도 모국에 큰일이 난 것 같습니다. 정말 죄송하지만 지금 급히 귀국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 그러잖아도 아까 TV를 보고 있었어요. 한국 무주에 코로나 변종 오미크론이 화산같이 폭발되고 있던데요?”

“엄마는 이 결정적인 순간에 머 고자질하는 거야 머야?”

“이년아, 그건 니 생각이구, 이 남자친구 사정도 읽을 줄 알아야지”

 

“언니야, 오늘 일생일대 친정 부모 상견례잖아?”

“아침에 신랑 깜이 도착한다는 치치와나의 깡통 전화를 받고 좀 놀랬지요?”

“그러나 모든 게 본인의 결정에 따라야 하는 거니까요?” 

깡통 전화는 특급 비밀 전화기이다. 

CIA, GI, AGE에서도 못 잡는 레이저 특정 주파수로 통신한다..

 

“죄송합니다! 다음 기회에 조용히 다시 오겠습니다”

나는 오른쪽 발을 뒤로 한 발짝 후퇴하며 무릎을 살짝 굽혔다.

그리고 뒤돌아 드론으로 뛰어갔다. 

강 관장님까지 나설 때는 분명 무슨 사연이 있을 것 같다.

코리칸은 드론 조종석에 잽싸게 앉아 시동을 걸었다.

다행히 열쇠가 그대로 꽂혀 있어서 다행이다.

부릉 부르릉! 하더니 가볍게 직각으로 치솟았다.

 


왕년에 월남 백마부대 참전 때 정글 속을 누비던 생각이 언뜻 났다.

1978년 백마 29연대 구축 초창기에는 한국군 따이한에 할당된 전투 헬기가 없었다.

그때 나는 야전병원에서 구급차를 몰고 있었는데 근처 혼바산 작전지역에서 부상병이 속출한다는 무전을 받았다.

나는 급한 김에 이웃에 합동 근무하던 미군 무장헬기 코브라를 훔쳐 타고 정글 속 작전지역으로 쳐들어갔었다.

의무대에 같이 근무하는 이현길 병장과 같이 말이다.

 

우리 의무대 요원들은 툭하면 미군 헬기를 빼앗아 탔다. 

덕분에 훈장이 아니라 영창에 들어갔다가 왔지만, 이따금 생각나는 추억이다. 

‘플래툰’ 등 월남전 영화보다 우리는 더 위험했다. 

명령 하달 없이 맘대로 미군 헬기를 훔쳤다는 죄목이다.

그러나 그때 우리가 서둘러 작전지역으로 헬기가 투입되지 않았다면 아군 시체가 더 많이 나왔을 것이다.

 

※웹소설-발끝에 채이는 블랙홀은 픽션입니다.

신상성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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