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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발끝에 채이는 블랙홀] 22-2. 아버지의 부음

신상성 소설가 (용인대 명예교수)

신상성 소설가 | 기사입력 2023/04/28 [14:58]

[웹소설-발끝에 채이는 블랙홀] 22-2. 아버지의 부음

신상성 소설가 (용인대 명예교수)

신상성 소설가 | 입력 : 2023/04/28 [14:58]

▲ 무예신문

 

그때 또 하나 잊혀지지 않는 추억이 있다.

코리칸은 점심시간이면 아버지에게 담임이 준 빵 등을 드렸다.

방과 후에는 을지로 국도극장 근처 인쇄소까지 단숨에 달려간다.

아버지의 리어카를 뒤에서 밀어주곤 했다. 

아버지는 인쇄물을 날라주거나 폐지 등을 리어카에 실었다.

중노동으로 일당을 버는 것이다.

 

리어카의 배달 목적지는 대개 일정했다. 

서울역이나 청량리역 주로 군용관계 인쇄물이었다. 

배달을 마치고 인쇄소까지 돌아오면 아버지는 노랑참외 하나씩을 사주었다.

빈 뱃속에서 그거 하나로는 공룡 혓바닥에 땅콩 하나다.

그러나 개똥참외 하나라도 어딘가. 

껍질도 버리지 않고 그대로 우겨 먹었다.

그럴 때만큼은 무엇도 부러울 것이 없었다. 

 

 

얼마 안 되어 구칠이네 집도 우리 행촌동 달동네로 이사 왔다.

못 가진 자들의 움직임이란 게 뻔하지 않은가. 

더구나 강아지 발바닥만 한 서울 한복판에서는 뛰어봤자 새끼발가락 끝이다.

그새 구칠이 어머니는 가난에 못 이겨 도망갔다.

 

구칠이는 술주정뱅이 아버지와 누이동생 하나를 데리고 왔다.

우리 집 곁에 가마니를 몇 장 얽어서 내가 움막을 만들어 주었다.

다행히 구칠이 누이동생은 영어를 몇 마디 한다고 외국인 회사에 취직했다.

비정규직이긴 하지만 하늘 같은 직장이 아닌가.

 

구칠이도 자연 우리 달동네 조직에 들어왔다.

여름 홍수가 나고 얼마 있다가 또 하나의 사건이 터졌다.

그날은 일요일이라 우리는 동네 입구에 평행봉이며 역기 등을 수리했다.

그런데 우리 똘마니 하나가 허부덕 내달아 왔다.

 

“막내 문진이가 일진에게 맞아 이빨이 3개나 부러졌어요”

코리칸은 즉시 구칠이와 함께 근처 어린이 놀이터로 뛰었다.

평소 으르렁거리던 일진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막내 이빨을 뽑아 보낸 건 그들의 선전포고였다.

 

우리 나이 이미 18세 전후,

어느새 피 맛을 즐기고 있는 나이가 되었다. 

그쪽 선봉장은 이 일대 학교에서는 소문난 악질 깡푸였다.

녀석의 아버지는 대검찰청 무슨 형사부장이라고 해서 더 날뛰고 다녔다.

그 어머니는 첩이란 소문이다.

 

깡푸는 자가 무슨 야쿠자라고 서대문 네거리 적십자병원에서부터 독립문까지,

자기 맘대로 관할 지역을 지정했다.

점점 정복해 오더니 결국 우리 행촌동까지 접수하러 온 꼴이다.

 

 

코리칸은 깨끗이 왕초끼리만 결판내자고 제의했다.

순간 녀석의 나이프가 햇빛에 번쩍하더니 내 귀밑을 스쳤다.

기죽이기 위한 전략이다.

그의 나이프는 내 등 뒤의 벚꽃나무에 꽃혔다. 

처음에는 깡패답게 맨주먹으로 싸우다가 각기 하나씩의 무기를 꺼내 쥐었다.

 

양쪽 똘마니들은 숨 죽여 지켜보았다.

두어 시간쯤 엎치락뒤치락 피가 튀었다.

정수리가 나이프에 찍혀 나가고 콧잔등도 찍혀 나갔다.

그러나 아직 결정적으로 무너진 게 없다.

순간 코리칸은 숨은 병기 공중회전 뒤돌려차기로 날았다.

깡푸가 나이프를 떨어뜨렸다.

 

동시에 녀석의 얼굴을 앞차기로 내리찍었다.

으윽! 하며 땅바닥에 내뱉은 그의 앞니 몇 개 쏟아졌다.

 

며칠 후, 종로 사단 조폭들이 칼춤을 추며 몰려들었다.

그들은 달동네에 휘발유를 부었다.

좁고 긴 골목길에 성냥불을 그었다.

동네 어른들이 곡괭이 등을 들고나왔다. 

내가 부삽을 들고 앞장섰다.

 

애애앵! 소방차와 경찰들이 에워쌌다.

코리칸과 구칠이는 일단 동대문 유지광 사단으로 튀었다.

종로 조폭사단에 대항하려면 어쩔 수 없다.

한 달 후, 아버지의 부음을 받았다.

장례식을 치르려면 달동네 집으로 다시 들어가야 했다.

이미 병든 둘째 형도 죽고 없었다.

 

뜨거운 쌀밥과 국 한 그릇조차 아버지 제사상에 올려놓지 못했다. 

조문이라야 동네 어른들 몇 분이다.

장지도 없었다. 구파발 화장터로 모셨다.

뼛가루는 청주 무심천에 뿌렸다.

달빛에 반사되어 하염없이 흘러가는 파도 위에서 우리 식구들은 소리 없이 울었다.

일진 깡푸가 보낸 청부살인 업자들이 코리칸 뒤를 따라다녔다.

어차피 한번은 사생결단 붙어야 깡푸와의 결산이 끝날 것이다.

 

*22화. 끝

 

※웹소설-발끝에 채이는 블랙홀은 픽션입니다.

신상성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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