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 도장 현관문에 화려한 실루엣이 떴다. 엉? 허리를 굽혀야 현관문에 들어올 정도로 키가 큰 외국인이다. 헤이잉! How are you! I’m chichiwhna! 웬 저녁 도깨비인가? 엉겁결에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미가 손을 내민 채 웃고 있다. 아항, 벨루치아 공국 공주님이 치치와나가 어찌한 일인가? 내가 반갑게 팔을 확 벌렸다. 오우 땅케! 하알유! 그미가 냉큼 달려와 내 모가지를 끌어안았다. 둘이 끌어안고 온 바닥을 얼마나 뒹굴었는지, 허연 얼굴과 눈썹이 먼지투성이 도깨비로 변해 비쳤다.
삼겹살에 소주에 김치찌개 그미는 맛있게 목구멍에 쳐넣었다. 하늘의 천사가 즐겁게 성찬을 드시는 모습이다. 청주에서 제일 큰 ‘금나라’ 한식집이다. 이 식당 큰아들 차영정은 중학교 때부터 소년범 경찰서 단골이다. 고교 때는 일진 깡패 두목이 되었다. 툭하면 유치장에 갇히곤 했다. 어느 날 금나라 한식집 사장이 코리칸에게 찾아왔다. ‘제발 우리 집 요 큰 놈 사람 좀 맹글어 주십시요’ 돈은 염려마세요. 그래서 내가 그놈 모가지를 끌고 와 태권도 훈련을 시켜서 국가대표까지 만들어 놓았다. 그러나, 그놈은 돈에 꾀여 서울 대형 프로모션으로 도망갔다. 배신한 것이다.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금나라도 손님이 팍 줄었다. 얼마 전만 해도 음식 배달꾼이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식당안을 휘젓고 다닐 정도로 바빴다. “나 이거 증말 좋아혀” 치치와나는 일부러 충청도 사투리로 말하며 까르르 웃는다.
치치와나의 여행 가방은 너무 간단하다. 슈츠백 하나뿐이다. 유럽에서 왕족이나 귀족들만이 가질 수 있는 진짜 황금 비씨카드가 있어서 그거 하나면 만사 오케이다. 구질구질하게 잡다한 것을 가지고 다닐 필요가 없다. 그래서 근처 공군비행장 미군 장교 호텔로 안배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미는 굳이 한국적인 게 좋단다. 나는 호텔 맨 위층 제일 전망 좋은 방을 잡았다.
“너 어캐 여기 촌구석까지 알고 왔어?” “카레나에게 당신 전화를 물어봤는데 안 가르쳐 주던데” “그래애?” “그래서 서울 국기원에 전화해서 여기 주소를 알아냈쪄” “근데 그때 니 사촌 언니 재판은 어떻게 됐어?” “으음, 아직도 힘들어……. 머 세상 다 그런 거지 뭐” 그런 거야.
그때 런던에서 그의 언니와 사우디 왕자와의 세기적 이혼 재판에서 처음 만났다. 1조 8천억인가 얼만가 위자료가 떨어졌던가? “이게 뭐야? 그런 건 골치 아파” 당신 보고 싶어서 드론 타고 급히 왔능뎅. 일개 왕국의 공주가 아무것도 아닌 일개 운동선수를 찾아 이캐 한국까지 오다니?
헐, 이상하네…. 여자들은 왜 이럴 때 우는 거지? 감정이 가장 극한적일 때 눈물로 폭발하는가 보다. 남자들은 이럴 때 허허롭다. 하늘을 보며 그냥 허허롭게 웃을 뿐이다. 잘 울지 않지만, 울음 이상이리라.
구칠이와 DMZ 미군 부대 하우스 보이 시절에도, 그렇게 구둣발에 짓이겨 죽어가면서도 공포보다 그냥 헛헛했다. 언뜻 뒤돌아보니 창피하기도 하고 애절하기도 한 과거사이다. 이캐 청주 고향으로 내려와 마음을 잡고 일을 해보려는데, 구칠이와 은짱이가 차례로 찾아와 옛날을 회상했던 것 같다. 더구나, 카레나까지 곁들여 어째 요즘은 과거 회귀 스토리텔링이다.
그미답지 않게 지난번에도 밤낮으로 울어대어서 화천에서 도망 나온 것이 아닌가. 그런데 치치와나도 한국까지 와서 이렇게 또 울어대다니? 임인년 새해가 되었으면, 시베리안 호랑이같이 날쌔게 날라가야 할 시간이 아닌가. 우울한 과거 시간에 잡혀 있었다니? 뭔가 좀 억울한 생각도 든다. 누구에게 억울하게 생각해야 하나? 그것도 애매하다.
* 20화(끝)
※웹소설-발끝에 채이는 블랙홀은 픽션입니다. <저작권자 ⓒ 무예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웹소설 관련기사목록
|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