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발끝에 채이는 블랙홀] 15-2. 멜버른 세계선수권 금메달신상성 소설가 (용인대 명예교수)
야! 명치야, 명치…… 코리칸 그렇지, 허리를 낮춰. 야, 짜식아! 더 낮추란 말이야, 그으렇지. 들어가면서 속사포, 연타로 조져, 그냥 조져. 구 선수의 고함소리가 너무 크게 금속성으로 울렸다. 세컨드가 있는 매트 가까이에서 고함을 지르기 때문에 그의 목소리가 발바닥에서 울려 오는 것 같았다.
아둔해 있던 내게 구 선수의 전략은 적중해 들어갔다. 면도날 같다는 나의 레프트 잽과 해머 같다는 공중회전 돌려차기도 처음에는 녀석에게 먹히지 않았다. 녀석은 다람쥐같이 피하면서 늑대같이 기습해 들어오곤 했다. 다람쥐같이 가벼운 몸놀림만큼 그의 펀치력은 약했다. 한 방의 펀치보다 연타의 속사포에 나는 자칫 정신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그래서 녀석은 자기의 덫을 쳐놓은 코너에 나를 유인해 넣으려고 애를 썼다.
두 번째 라운드 종반인데도 나는 녀석에게 결정타를 못 먹였다. 야! 토리칸, 이 시키야, 뭘 해 임마, 맞으면서 들어가. 그 새끼는 애기곰 펀치야. 맞으면서 들어가. 그거 있잖아. B29! 구 선수의 비명이 다시 들렸다. 그렇다. 맞았어.
코리칸은 그의 잽을 지나치게 경계하고 있었다. 미처 자신도 잊고 있었던 것을 구상기가 일깨워 준 것이다. 코리칸은 우박 쏟아지는 그의 연타를 맞으면서 낮게 파고들었다. 태평양 고래가 수면 위로 고개를 쳐들 듯 그의 명치를 적중시켰다. 순간 그가 가슴을 안고 매트 위를 몇 번 굴렀다. 다시 튀어 일어서는 그의 머리를 내리찍기로 도끼날을 날렸다.
우와와, 우와와!! 어느새 88서울올림픽 붉은 악마노래가 합창으로 터졌다. 관중들은 오랜만에 입장료 한번 제대로 섰다고 생각할 것이다. 여름날 파리채에 정통으로 얻어맞은 똥파리마냥 쫘악! 뻗은 리셀바토 위로 태극기가 날렸다. 관중들은 저마다 그 똥파리의 저격으로 오늘 밤, 잠 한번 제대로 잘 것이다. 태권도란 이런 통쾌함으로 보는 것이다. 자기가 원한을 가지고 있는 놈을 패주지 못하는 걸 이렇게 선수가 대신 패주는 연상 같은 것 말이다.
결승전이 끝난 그 날 밤, 구 선수와 코리칸은 멜버른에서는 가장 크다는 호텔에 처음 쳐들어갔다. 아직은 경기 중이므로 콜라 한 컵 먹는 것도 극히 조심스럽다. 설탕 숟갈이라도 한번 잘못 핥았다간 계체량 수위가 넘어간다. 이제까지의 고생이 도로 아미타불 되는 경우다. 구 선수도 레슬링 1회전에서 필리핀 이레스트 라엘을 엎었다. 2회전에서 파키스탄의 디 자할을, 3회전에서 최강적 일본의 이이쓰가飯塚르 침몰시켰다.
한시름 놓은 것이다. 특히나, 왜놈 군함을 침몰시켰다는 게 일본 열도를 수장시킨 것만큼이나 한국 국민은 열광했다. 구상기 개인만의 감정이라기보다 전 국민의 소원사항이었다. 그것도 완력을 구사해야 하는 힘의 경기, 레슬링에서 왜놈의 등뼈를 뚝! 소리 나게 부러뜨렸으니 얼마나 통쾌한가! 고국에서는 전 국민이 불난 호떡 집마냥 떠들썩할 것이다. 레슬링도 복싱과 같이 고대 올림픽에선 둘 중의 하나가 죽어 나가야 경기가 끝났다고 한다.
폭군 네로도 출전하였으나 메달권에서 탈락하였다. 그러자 그는 금메달을 강제로 빼앗아 자기 목에 걸었다. 그는 권력만이 아니라 체육에도 미쳤다. 네로가 죽고 난 뒤, 올림픽위원회에서는 그가 강탈해 간 금메달을 취소시켰다. 역대 수상자 명단에서 삭제된 인물로서 또한 유일하게 그 이름이 남은 셈이다. 유명해지는 것도 여러 가지라며 구 선수는 레슬링에 관한 얘기를 재미있게 들려주었다. 구 선수도 배고픈 고생을 많이 하면서도 야학 공부도 같이했다. 한때 청주의 한국체육관에서 같이 연습했다.
그는 올림픽에 관해서는 올림픽 사전 같았다. 나이도 몇 살 위여서 코리칸은 형님같이 잘 따랐다. “오늘 구 선배님이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요” 고 리셀바토 녀석 미꾸라지마냥 어찌나 잘 빠지던지, 흐이그, “누구나 다 그래, 본인은 극도의 긴장 상태에선 상황판단을 못 해” 옆에서 보면 훤히 다 보이거든, 바둑도 마찬가지야, “야, 이거 코리칸 선수 아냐? 이건 또 내 사진이네!” 그런데 이 고부랑 글자 무슨 내용인지?
호텔 웨이터가 어떻게 알아보고 그날 석간신문을 우리 테이블에 갖다 주었다. 키가 작달막한 동양인인 데다가 우리들 츄리닝 등 뒤의 ‘KOREA’라는 글자를 본 모양이다. 멜버른 전 시민은 텔레비전을 통해서 우리들 일거수일투족에 대해서 물론 열광하고 있었다.
* 15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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