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천 산천어 축제장이다. 카레나는 최근에 생겼다는 살랑다리를 먼저 뛰어가며 키들거렸다. 화천읍 대이리에서 구만리로 넘어가는 살랑살랑 다리이다. 살랑다리 한복판에는 북한강 강바닥이 보이는 통유리도 있었다. 장천화는 자기 고향을 자랑하며 안내해 주었다.
“우와, 금년에 새로 나타난 호랭이 같이 달리넹” “용인 에버랜드 백두산 호랑이가 탈출한 거 아냐?” “어, 멸종동물 1급 백두산 호랑이 새끼가 태어났다지?” “지난 여름 8마리나 쑥! 뺐다구 했어” “저기, 눈썰매장에도 가봐요” 카레나가 소녀같이 한껏! 소리쳤다.
별미인 산천어 무침회를 된장에 찍어 먹으며 키들거렸다. 멀리 노적봉 골짜기에 쌓인 흰눈이 보였다.
화천 산천어 축제는 1월초부터 화천 읍내 곳곳에 주제별로 축제가 벌어진다. 북쪽이어서 눈과 얼음의 극락세계이다. 세계 최고의 실내 얼음조각 전시장도 있다. 맨 손으로 산천어 잡기, 얼어붙은 강물 위에 구멍을 내고 낚시하기, 눈썰매 타기 등 꼬마들과 가족 힐링에 최고이다.
화천군수의 아이디어로 2003년 제1회를 시작했다. 매년 약 1백만명씩 몰려 시민들과 어린이들에게 즐거움을 선물하고 있다. 이곳 화천 출신 태권도 선수에는 인용대 후배 김대헌 선수도 있다. 그는 십여년간 국가대표를 지낸 모범생이다. 그러나 금년 여름 도쿄올림픽에서 첫째로 기대했던 금메달깜이었다. 어이없게 결승전에서 메달을 놓쳤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던가. 경기에는 운도 따라야 한다. 단순한 체중조절을 실패로 매트에 들어 서보지도 못하는 불운도 적지 않다. TV에서 보듯이 화려하지 않다. 올림픽 또는 선수권대회 등에서 참가선수 중 시상대에 올라가는 선수는 약 1%도 안 된다. 약 99%가 들러리가 된다. 억울하지만 재미있다. 세상이 원래 그런 것이 아닌가.
마침 TV에선 ‘전국택견경기대회’가 충주에서 한참이다. 한국 전통무예인 ‘택견’은 유네스코에도 등재가 되어 있는 예술이면서도 무술이다. 제2부에서는 관중의 기대를 모은 종합무술 경기도 곁들였다. 택견과 중국의 쿵푸, 일본의 극진 가라테, 합기도 등과 붙었다.
“여어, 미국의 복싱 태국의 타이와의 대전표도 있네” “지금의 태권도도 원래 고구려 때 택견에서 나왔어” “그랴, 평양 쌍영총 고분 벽화에도 ‘각저희’角抵戲라고 있제” “그런데 중국 구당서와 산해경에도 ‘수박도’手搏道라고 비슷한 것이 있었대?” “이집트 박물관에도 비슷한 그림이 있어요. 제가 아프리카 수단에 봉사활동을 마치고 돌아올 때 파라오에 들렀지요” 천화 애인도 열심히 흥을 돋구었다.
“자존심을 가지고 보호구도 없이 대전하는 것이어서 매우 위험혀” “자칫 눈을 맞아서 실명당하거나, 심지어 급소에 맞아서 숨이 멎기도 한다우” “남자들은 왜 이렇게 싸움을 좋아해요?” 된장 쌈을 싸서 천화 입에 구겨넣으며 힐난했다. 그미는 화끈한 카레나와 달리 조선조 여인같이 조용했다. 입은 옷도 개량한복으로 산천어 같이 동작이 느리다.
격투기 경기규정상 택견도 머리와 손에 보호구를 장치하게 되어 있으나 이 경기만은 일시적인 예외로 진행된다. “따라서 심판이 예민하게 살펴야 해요” 즉각적인 위험에 즉각 중단시켜야 하는 등 목숨이 오락가락 한다. 택견은 유연하고 율동적인 춤과 같다. 3박자 리듬의 부드럽고 곡선적인 동작은 관중들도 재미있다.
“택견은 보기보다는 결정적인 수간에는 치명적입니다” “태권도에서도 택견의 고유한 손기술을 많이 원용합니다” 웃음을 자아내기도 한다. “택견은 공격보다는 수비가 중심이야, 방어하면서 틈을 보아 급소로 한번에 쥐기는 것이제” “태권도 같이 직선적이고 직각적이기보다 원형과 곡선을 반사적으로 활용한다. 한번 때려서 상대방이 안 맞으면, 그 다음 순간 원형으로 돌아 즉시 가격하게 돼 있다. 원형동작인 태극형이다. 태권도의 제1동작 도산형과 같다. 음양오행에 따른 36개 기본동작이 있다.
고대시대 부족국가들이 전쟁을 통해 통합되어 고구려, 백제, 신라 등 대형 3개 국가로 할거했다. 중국 대륙의 동북지역과 한반도를 지배했다. 택견, 수박 무술이 수련의 기초로 고구려는 ‘선배’ 신라는 ‘화랑’의 청소년 집단교육 제도를 실시했다. 산천을 주유하며 무예 수련을 했다.
고구려 수도였던 환도성(만주 집안현 통구)의 무용총 벽화(AD209)에는 택견 등이 남아 있다. 신라 석굴암 금강역사상, 분황사 9층 석탑의 인왕상 그리고 ‘일본서기’에 백제의 대좌평 스승이 일본 청녀들에게 상박을 가르치는 장면이 나온다.
멜본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2회전은 오후 3시에 시작됐다. 코리칸의 세계대회 출전 첫번째 멜본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이다. 코리칸의 두 번째 상대는 로버트 짹 나이푸! 이름조차 무섭다. 그는 호주 출신으로 홈 그라운드의 이점을 만끽하는 듯 여유있게 매트에 올라왔다. 원래 호주는 18세기 영국인 개척자들이 세운 나라이다. 영국 교도소 출신들이 많았다고 한다.
순박한 원주민들을 무참하게 학살하여 빼앗은 땅이 아닌가. 아메리카도 영국인 가운데 혈기있는 개척자들이 미국 서부에서부터 본토 인디언들을 정복해나간 것이다. 그들의 일방적인 백호주의(白濠主義)는 20세기초끼지 강짜를 부렸다. 로버트 선수는 초등학교 학생인 듯한 아들을 메트 한복판에서 높이 치켜 들었다.
순간 자국민들의 함성에 실내체육관 사방 벽이 닫다가 무너질 것 같았다. 코리칸은 레프트 잽으로 탐색전을 벌이며 거리를 맞춰보았다. 약간 허풍을 떨며 녀석은 두 팔을 내려놓고 춤추기도 했다. 코리칸은 짐짓 얻어맞아가며 녀석의 발차기를 가늠해 보았다. 어제 1회전 때의 알베르트보다 파워력은 있으나 이런 정도는 한국 현금배 선수보다도 못하다.
땡! 1라운드 공이 울리는 것과 함께 녀석은 돌아서는 듯하면서 다시 뒤로 돌아 내 명치를 공격했다. 방심해 있던 코리칸은 어이없게 한방 먹었다. 레프리가 그쪽 코너에 반칙! 고함을 질렀다. 비겁하게 녀석은 공이 울리고 난 즉시 등 뒤로 공격한 것이다. 등 뒤 공격은 반칙이며 비겁하다.
그들의 전통 서부 사나이 불문율에도 위배되는 행동이다. 카우보이 건 맨들은 절대 등 뒤에서 총알을 날리지 않는다. 준비하지 않은 상대를 공격하는 법은 없다. 메트 사이드에는 아까 그 꼬마와 로버트의 부인인 듯한 젊은 여자가 기도하듯 앉아 있었다. 꼬마는 철없이 뛰고 구르며 고함을 질러대었다. 그 꼬마를 보자 어린시절 코리칸 자신의 자화상이 떠올랐다.
그가 7살 때였던가 동네 아주머니 등에 업혀 문무대왕 수증능이 가까운 감포에 수양아들로 팔려갔다. 식구들이 죽치고 앉아서 그냥 굶어죽느니, 막내인 나만이라도 부자집에 가서 배불리 먹을 수 있는게 낫다며,
식구들 모르게 아버지는 나를 친척 아주머니에게 업혀 보냈다. 그가 양자로 팔려간 노인부부의 집은 아들 없이 쓸쓸하게 지내고 있었다. 주인마님은 옥수수나 고구마를 삶아 동네 꼬마들에게 나누어 주며 게임을 시켰다. 산꼭대기 공동묘지 소나무를 돌고오게 하여 먹을 것을 주었다.
똥지게를 지고 똥푸기 시합이나 홀랑 벗고 아리랑 춤을 추게 한다든가 하는 것은 괴벽이었다. 일종의 오징어게임 같은 것이다. 코리칸은 늘 일등했지만 손이 더럽다든가, 모가지에 때가 있다든가 하는 이유로 줄서기에서 따로 젖혀 놓았다. 그때 대열에서 제외되는 설움은 어린 마음에도 이상했다. 불공평하다. 그럴수록 얼굴도 모르는 어머니 생각이 사무쳤다. 어머니는 내가 세 살 때 돌아가셨다. 양자라고 하지만, 어떤 배려나 애정이 없었다.
*14화.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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