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휴대폰이 출렁거렸다. “엉, 카레나냐, 지금 무주야, 서울에 가서 연락할께...” “머? 너 뒈질래? 종일 네 생각만 하는데 머? 무주라구?” “너 당장, 이 화천 별장으로 날라와, 내가 드론 내려 보낸다아” 내 대답도 안 듣고 일방적으로 끊어버렸다. 그미의 앙칼진 목소리를 듣자 지난달 파리 프갓탤이 생각났다. 그러고 보니 카레나를 못 본 지 보름이 넘은 것 같다.
똑, 똑! 노크도 하지 않았는데 이중 방문이 팍! 열렸다. “머야, 놀랬잖아?” “등신아, 여기는 내 놀이터인데 놀래긴 뭘 놀래?” 카레나는 코리칸의 드론이 뒷마당 숲에 내리는 걸, 이미 알고 문을 미리 열어 두었던 것이다. 별장 반거리 1km 이내는 모기 새끼 한 마리 얼짱거리지 못한다. DD 그룹총수 카레나 아버지가 첨단전자 경비장치를 해놓은 것이다. 화천 ‘평화의 댐에’서 약 35km 가면 바로 북한 금강산이다. 카레나가 토끼 눈을 뜨고 있는 코리칸의 메가지를 끌어안았다.
다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또 언놈이냐? 이 특별지역, 비밀의 화원을 아는 놈이 없는뎅? 문을 두드린건 장천화였다. “야, 슬슬 나가보자, 요즘 세계적인 ‘화천산천어’ 축제 아니냐?” 화천이 고향인 장천화가 으스댔다.
2012학번 태권도학과 동기생이다. “너거 가시나, 은제 여기다 이런 비밀의 별장을 만들었냐, 국정원도 아니고, CIA 지부도 아니고” “글쎄, 사실 나두 첨 와보는 거여” “여기는 내 관할구역이란 거 노두 알잖아, 나한테 사전 신고 안 했으니 오늘 당장 철거다” “그건 그렇고, 이번에 무주에서 니가 배무정 선배를 만났땜에? 그래 장은경 선수 얘기 계속혀 봐” 인용대 시절 우리는 유도 실기 시간에 장은경 교수에게서 처음 낙법을 배웠다. 전방낙법, 후방낙법, 업어치기... 재미있었다.
유도는 태권도와 달리 주로 손을 많이 쓰는 기술이다. 물론 둘 다 손과 발을 다 쓰지만 주로 활용하는 것은 다소 다르다. 복싱은 송순천 교수에게서 배웠다. 그는 멜본올림픽 복싱 영웅이다. 1930년대 일제강점기 손기정 마라톤 이후, 복싱으로선 한국에 맨 처음 메달을 안겨주었다. “아, 맞았어요, 은짱이 선수 그때 마지막 어캐 되었나요?” 카레나도 끼어들었다. 그미도 코리칸에게서 예전에 장은경 얘기를 많이 들어서 존경하고 있었다.
무주에서 배무정 선배가 해주던 장은경 스토리를 코리칸이 계속 이어 주었다. “다시 마지막으로 네 인생을 봐서 센다. 하나아, 두둘....” 은짱은 어느 쪽도 포기할 수 없었다. 전국체전도 아킬레스건도 내 유도 인생 이렇게 끝나는 건가? 그 순간 주먹만 한 돌멩이가 우박같이 쏟아졌다. 짹! 소리 없이 건달들이 벌렁벌렁 나가떨어졌다. 그쳤는가 싶던 돌멩이가 다시 집중 공격되더니, 죽여! 밟아! 일단의 건축공사장 쇠뭉치도 춤을 추었다.
철삿줄을 풀어주면서 누군가 속삭였다. 헐, 뒤돌아보니, 아까, 야밤에 맨 처음 나를 깨웠던 햇병아리 신입생이었다. 철삿줄에 묶여 있던 손목, 발목이 패여 있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은짱이가 감독에게 불려 나가자 곧 두 명의 신입생이 뒤따랐다. 그들도 야밤에 감독이 갑자기 호출한다는 게 좀 이상했던 것이다.
산 너머 은짱의 뒤를 몰래 쫓던 신입생 둘이 잡혔다. 조폭들이 중간에서 가로막아 쫓아버렸다. 낌새를 눈치챈, 신입생들이 숙소로 돌아와 보고했다. 훈련단 전원이 비상소집 되어 숲속을 수색하였다. 계곡 끝에서 납치 현장을 발견했다. 부삽과 야구방망이로 조폭들을 습격했다.
신입생들의 돌멩이가 기습하는 순간, 은짱이를 위협하던 건달이 억! 하고 뒤통수에 부삽이 찍히는 순간, 은짱의 발목을 찍었다. 그러나 은짱이가 날쌔게 도끼날을 비켰지만 잘못 정강이를 얻어맞았다. 천만다행이다. 정강이뼈야 아물면 되지만, 아킬레스 힘줄이 끊어졌더라면? 선수 생명이 영원히 끊어졌을지 모른다. 아찔하다.
은짱은 이튿날 바로 어머니의 병실로 달려갔다. 어머니의 무딘 손을 잡아주었다. 수술하지 않으면 위험하단다. 그러나 출전비를 다 털어도 택도 없다. 어머니는 매일 새벽이면 생선을 머리에 이고 동네방네 팔러 다녔다. 남의 밭에서 일당 품삯도 팔아 오곤 했다. 그런 돈으로 은짱이의 뒷바라지를 해준 것이다. 내 손바닥도 축구공 가죽 같다. 꼬집어도 감각이 없을 정도인데 호미질과 낫질로 못이 박힌 어머니의 손바닥은 반질반질한 차돌 같았다.
천정 밧줄을 오르내리는 훈련 등 그의 손바닥도 몇 번씩 가죽이 벗겨져 곰 발바닥이 되었다. 언제나, 은짱이가 올림픽 메달을 따서 어머니를 편히 모실 것인가? 은짱은 어머니의 애살스러운 볼을 만지며 애써 웃었다. 어머니는 처음에는 유도를 못 하게 했다. 막내가 키도 작고 잘 먹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격투기는 단백질을 잘 공급해 주어야 힘이 난다.
그래서 유도 경기장에는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다. 어쩌다 텔레비전에서 유도경기 장면이라도 나오면 꺼버렸다. 잘못하면 뼈가 부러지거나, 힘줄이 늘어진다. 그러면서도 어머니는 은짱이가 경기에 나가는 날은 전날부터 목욕재계하고 뒤꼍 장독대에다 정한수를 떠놓고 빌었다. 그리고 경기에서 무사히 돌아올 때까지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기도드렸다.
*13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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