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1주일 남았다. 작년에도 지순박은 은짱이를 납치하여 야산에 감금해 놓기도 했다. 그는 이번 전국체전에도 의정부 조폭을 매수한 것 같다. 조폭 세계에선 팔다리 등 사지 하나씩 값을 매겨놓았다. 은짱은 두 손이 뒤로 묶인 채, 나무 기둥에 높이 매달렸다. 양말까지 벗긴 발목에는 철사를 감았다. 그리고 은짱이 또래 조폭 양아치가 짜구로 땅을 내리찍었다.
“야, 짜샤! 둘 중에 하나 선택하는 거야!” “니가 이번 체전에 나갈 거냐 아니면, 요 도끼날로 네 아킬레스건을 끊을 거냐?” “시간은 딱! 10초다앗! 하나앗- 두울- 세엣…… 자아” 순박이도 원래 Y 공고 같은 유도훈련단이었다. 은짱과 같은 라이트급 –53kg으로 중학 시절부터 천적이었다. 그는 ‘허리후리기’의 명수였고, 은짱은 ‘업어치기’가 주특기였다. 그에게 틈만 주었다 하면 ‘허리후리기’나 ‘빗당겨치기’에 안 나가떨어지는 선수가 별로 없었다.
고교 때는 은짱이보다 키가 두 배나 커진 녀석에게 그런 기술은 더욱 효과가 좋았다. 녀석은 양공주 기지촌 일대 서방 노릇도 했다. 고교 때부터 누나 방들의 서방이라니? 패싸움과 빌라 방화 등으로 학교에서는 몇 번이나 제적당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가 의정부 유지인 데다가 양조장 사장이다. 또한, 의정부시 체육진흥회 회장을 맡고 있다.
오히려 의정부에 시장이나 경찰서장이 부임해오면 녀석의 아버지에게 확실하게 인사를 해야 했다. 의정부시의 체육 자금은 물론 Y 공고 훈련단 지원도 그의 아버지 기분 여하에 달려있다. 덕분에 순철은 손쉽게 일진의 왕 중 왕이다. 결국, 지순박은 의정부에서 떠나야 했다. 그가 관할하는 양공주가 4명이나 잔인하게 피살되었기 때문이다. 수원 근처 유도 명문인 의왕공고로 전학갔다.
순박이가 보낸 청부조직의 똘마니는 다시 싸늘하게 다그쳤다. 여덟- 아홉, 아홉에 반! 은짱은 눈을 감았다. 이번 전국체전을 이렇게 포기해야 하나?` 이번 경기실적에 따라 인용대 또는 한국체대에 입학할 수 있는 특기생으로 가산점이 붙는 것이다. 고교 3년간 주요경기 입상실적에 점수가 부여되어 있다. 그걸 총합산하여 상위권이면 스카웃 대상도 되고, 특별전형도 되고, 장학생도 되는 매우 소중한 전국체전이다.
은짱은 아홉에 반 다시 반...! 악마의 마지막 셈이 떨어지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팔이 뒤로 묶여 있어서 기도도 할 수도 없었다.
뜬금없이 6·25 때 북한 인민군에게 총살당한 큰형의 초라한 얼굴이 떠올랐다. 늘 웃는 얼굴 위에 별빛 같은 눈 초롱을 달고 다니던 형이다. 산속 콩이나 옥수수를 몰래 잘라다가 아궁이에 구워주곤 하던 큰형이었다. 목말도 자주 태워주었다. 동네 반공청년단들과 함께 포승줄에 묶여 인민위원회에 끌려갔다. 그러나 며칠 후 아버지의 등에 업혀져 돌아왔다.
큰형이 연득없이 소리쳤다. 임마야, 은짱아! 유도는 네 생명이야! 네 발목이 도끼에 찍히면 네 생명은 끝장이야, 빨리 도망가! 뭘 해? 아아, 큰형! 도망가고 싶어도 못가, 철삿줄에 두 손, 두 발이 다 묶여 있잖아?
이 새끼! 그냥 땅에 묻어버려? “이 짜샤! 깡다구 좋은데…… 썅!” 질기긴 질기네……. 은짱의 발목에 새하얀 도끼날이 꽂혔다. 아, 이제 내 야망은 이것으로 끝이구나. 파란만장한 유도 인생 이걸로 마감하는가? 그런데 피가 나지 않았다. 아니, 아프지도 않다.
우하하…. 건달들이 손뼉을 치며 폭소했다. 그 악마는 큰소리로 웃으며 은짱의 발목 옆에 찍힌 도끼를 다시 뽑아 들었다. 흰 이빨로 물어뜯을 듯이 흰자위 눈알을 희번덕거렸다. “이 난쟁이 시키야, 다시 센다. 이번은 땅바닥이 아니고, 네 아킬레스야, 알간?” 다시 아홉에 반 그리고 다시 반?
새벽의 가을 하늘은 너무나 신선했다. 무슨 일이냐는 듯이 새벽은 기지개를 켜면서 나비물로 퍼졌다. 그 안개 속을 헤치며 불발탄을 안고 쓰러진 짱구가 나타났다. “은짱아, 이 바보 시키야! 그냥 포기한다고 해, 살고 봐야제” “이번 체전에 못 나가면, 내년에 또 있잖아?”
“이 짱구야, 가랑이 찢어지게 가난한 우리 집에서는 이번 특기생이 아니면 끝이야“ 죽어도 이번에 나가야 돼…. 이번 출전비를 뭇 타면 엄마 병원비도 더 이상 댈 수 없어! 은짱은 한껏 소리쳤지만, 밖으로 소리되어 나오지 못했다. 나도 일본 야마시타 같은 국민적 영웅이 되고 싶단 말야. 지순박이가 결국 이런 식으로 나를 침몰시키다니, 내가 이번에 출전 못 하면 가장 유력한 그가 우승하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12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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