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며칠 전 문체부 곽 국장이 머라던?” “정부 기관이라면 무슨 정치적 일이겠지요 하고 들어갔어요” 문체부에서 저를 호출할 일이라면 뻔하다. 도쿄올림픽도 이미 끝났기 때문에 가볍게 생각했다. 그러나 혹시 무슨 정치적 이슈가 있는가? 강 관장님의 휴대폰을 받았을 때는 국기원 휴게실에 있을 때였다. KBS의 ‘위대한 한국 태권인’ 주문사항을 정리하고 있었다.
휴대폰을 벋으면서 TV를 올려다보았다. 윤석렬 대선후보의 부인이 머리를 숙이는 게 보였다. 며칠 전에는 이재명 대선후보가 자기 아들을 대신 고개를 숙였다. 도박에다가 무슨 성매매까지 했니, 안 했니 기자들이 쑤셔대었다. 대선후보들의 가족사를 발가벗기는 짓이다.
세계에서 이런 추태는 아마 한국밖에 없을 것이다. 후보 자신이 중요한 것이지 가족들까지 옷 벗길 일은 아니다. 대선 후보자 본인만 철저하게 검증하면 될 게 아닌가. 일본 정치가들은 배꼽 아래 일은 일절 거론하지 않는단다. 중국은 여자 문제가 터지면 즉시 잘라버린다.
세컨드라도 발각되면 그대로 영창깜이다. 공산주의 사회이어서 남녀문제가 칼날이다. 미국이나 유럽은 아예 가족 문제는 건드리지 않는다. 철저한 개인주의, 자유주의이다. 한국만이 유난히 가족 연좌제이다.
걸핏하면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를 노래한다. 물론 온 가족이 깨끗하면 얼마나 더 좋겠는가. 그러나 완전하게 결백한 가정이란 박물관 깜이다. 어쨌든 이번에 식겁을 한번 맛보면 나중에 좀 더 조심하겠지. 더욱이나 청와대에 들어간다면 그 식겁이 더욱 효과가 날 것이다.
“어이, 우리 오랜만에 쏘주나 한잔하지, 내가 쏠 테니까” 강 관장이 우리를 태우고 일부러 멀리 서해 바닷가로 차를 몰았다. “아참, 옛날에 장은경 선수가 병원에서 아깝게 죽었제” 배 선배가 인용대 시절 선후배로 친했던 장은경 선수를 떠올렸다. 몬트리올올림픽에서 은메달 유도영웅이었다. 처음처럼 쏘주가 몇 순배 돌자 엉뚱한 장은경 추억이다. 실제는 깨끗한 업어치기 한판승! 금메달이었다. 그러나 부정 판정으로 끝났다.
경찰이 몰려들고 난장판이 되었다. 국제 체육기자단들도 ‘도둑맞은 금메달’ 제목으로 긁었다. 심사위원들이 재심했다. 역시 장은경 선수의 금메달이 확실하게 판정났다. 그러나 올림픽조직위에서는 일단 한번 내려진 판정은 설사 잘못되었다고 하더라도 번복할 수 없다고 했다. 만약 지금 같이 전자판으로 판정했다면 간단했을 것이다.
“아, 장은경 선배의 학교 때 애칭이 ‘은짱’이었어” “난장이 같은 짱돌의 그는 업어치기가 특기였제” 그의 손끝에 닿았다 카몬 킹콩도 나가떨어질 정도였다. “은짱은 의정부에서 자랐어…….” 배무정 교수가 그의 과거를 들추었다.
은짱이가 왜 여기 누워있는지 모르겠다. 의정부 병원이다. 어렴풋이 보이는 망막 속에 근심스러운 어머니의 눈망울이다. 동공에 크게 확대되어 보였다. 그 뒤에 코치이자 체육 담당교사인 채 선생님이 발목을 흔들었다. 그 순간 은짱은 기절할 듯 비명을 질렀다. 폭포수 절벽 중간에 매달려 있는 은짱은 필사적으로 기어올랐다. 그러나 폭풍우 물살은 은짱이를 자꾸 아래로만 떨어뜨렸다. 어디선가 짱구의 울음소리가 발목을 휘어잡는다.
어린 시절, 나와 늘 붙어다녔던 짱구는 6·25 때 불발탄 대포를 찾아다녔다. 그것을 고물상에 갖다 팔면 두둑한 동전이 들어왔다. 돌멩이로 불발탄 녹을 긁어내다가 폭발되어 저세상으로 꺼졌다. 우리는 학교에서 끝나면 그 또래들끼리 모여서 의정부 뒷산 6.25 격전지 일대를 뒤졌다. 탄피 등을 주우면 미제 껌, 젤리, 쨈 등 먹을 수 있었다.
짱구의 몸에서 피가 흘렀다. 짱구는 내 발목을 잡고 소리쳐 울었다. “은짱아, 이 새꺄! 날 살려줘, 피를 막아달란 말야 짜식아!” 13살짜리 짱구는 시뻘건 대낮에 피를 흘리었다. 악몽에 소스라쳐 깨어났다. 그리고 미군 백차에 실려 가더니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어머니의 숨죽인 울음소리 속에 아버지의 황소 목소리도 들렸다. 은짱은 다시 정신을 추슬렀다.
아버지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내 앞가슴을 풀어헤쳤다. 나를 다독거리며 웃었다. “은짱아! 이 짜아식! 너는 남자지? 사내 대장부 말이야” 아버지는 늘 그랬듯이 바다거북 같은 육중한 몸으로 내 참새 같은 가슴을 안아 주었다. 아버지의 가슴만 보면 은짱은 바다 위에서 잠자는 듯 늘 평화와 휴식을 느낀다.
의정부 일대의 천하장사였던 아버지는 상금으로 황소도 끌고 왔다. 그 황소를 잡아 굶주린 피난민들의 배를 채워주기도 했다. 6.25 직후, 북부 서울은 피난민과 양공주 그리고 미군들의 또 다른 전쟁터였다. 아버지는 은짱이가 덮고 있던 담요를 걷어버렸다. 내 오른쪽 발목을 찬찬히 살펴보면서 눌렀다.
-11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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