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발끝에 채이는 블랙홀] 4-1. 멜버른 올림픽 송순천 빙의신상성 소설가 (용인대 명예교수)
송 코리칸은 멜버른 올림픽 영웅인 송순천에 빙의했다. 그는 태권도에 목숨을 걸다 보니 과거 영웅 체육인들을 찾아 빙의했다. 그래서 혼백과 기(氣)를 온전히 흠뻑 받으려는 것이다. 송 코리칸은 송순천 선수의 청주 복싱 도장에 나타났다. 마침 몬트리올 은메달 영웅 경은짱 유도선수도 왔다.
복싱과 유도는 종목이 달랐지만, 서로의 힘과 기술로 상대방을 제압하는 격기종목으로서는 비슷하다. 레슬링이나 씨름 종목도 비슷하다. 특히 한국과 같이 전쟁을 치른 가난한 나라들은 이렇게 힘을 쓰는 종목에서 두각을 나타낸다.
태권도가 올림픽 종목에서 처음 채택된 것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때부터이다. 따라서 송 코리칸은 태권도이지만 그 기술적 특기를 과거 복싱이나 유도 기술에서 접목시키고자 했다. “엉? 은짱 선수 여기 청주까지 어쩐 일이야?” 송 코리칸이 송순천으로 변이되어 있다.
“답답하기도 하고, 형님 생각도 나고 겸사겸사 내려왔어요” “왜? 그 유도협회도 지랄이야?” “한국 체육 단체들이 다 쓰레기들 아니에요?” 국가대표를 최종 선발할 때는 실력이 아니고 돈 봉투 장난질이다. “헐, 또 그 오겹살이 뒤통수치는구먼, 자아 조금 있으면 레슬링 구상기 선수도 온다캤어” “아, 그래요? 제가 짜장면이나 곱빼기로 모시지요” “아니 그 호랑이 같은 레슬링 구 형님 말이에요?” “그랴, 그 친구가 이번에 레슬링협회 사무국장이 되는 모양인데, 삼성 이병철이가 두 손 들고 지원해 준다나 봐?” “그래요, 그럼 나도 유도 때려치우고 레슬링으로 바꿀까봐유? 허허….”
자유롭게 날려 보내고 나니 훨씬 가뿐해진다. 멀리 청주 시가지를 내려다보며 그동안 새뜻해 왔던 생각들을 칼로 잘라내었다. 일단 모든 걸 버리고 나니 잉꼬 새 같이 날아가는 기분이다.
모든 것을 털어버리고 마음을 비운다는 것이 이처럼 어려우면서도 이처럼 삽상하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방금 날려 보낸 세 마리의 잉꼬도 그런 마음이리라. 닫혀 있던 우리에서 열려 있는 세계로 마음껏 날아오를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자유롭고 즐거운 일인가. 이제 도장 안에는 움직이는 것이라곤 없다. 아니 살아있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5학년 5십 줄에 걸린 장년의 사나이가 그렇게 남을 쳐다보듯 마주 보고 있다. 아직 얼굴 어디에도 주름살 하나 없지만, 반백의 흰머리는 반백의 나이를 일깨워 주고 있다.
“자네 얼굴 가죽이야!” 노 사범이 꼬집어 쥐어뜯으며 말했다. 역시 곰 발바닥 가죽 아닌가. 오히려 어금니 잇새로 웃음이 픽 새어 나왔다. 절망적일수록 오뚝이처럼 일어서던 송순천이 아닌가.
그러나 이젠 지쳤다. 낼 모래면 외손자를 볼 나이에 무슨 도장을 새로 시작할 수 있을 것인가. 마지막 기대를 걸었던 차영정 복싱 선수마저 떠나버린 마당에 희망이 없다. 이 도장은 이제 원래대로의 청주 농협창고로 되돌려 주는 수밖에 없다. 거울 위의 호돌이 인형이 손짓했다. 그 인형 옆에 차영정 선수가 스스로 매일 하루씩 X표로 지워가던 달력이 바람에 용춤 추었다.
88서울올림픽 455일 남겨놓고 차여정은 빠이빠이 했다. 나도 모르게 다시금 씁쓸한 웃음이 났다. 청주 시내에서 제일 큰 음식점 외아들 차영정을 중학교 때부터 점찍어서 5년 만에 복싱 국가대표로 만들어 놓았다. 그러나 그는 뒤도 안 돌아보고 서울 유명한 프로모터에게 팔려갔다. 이유야 간단하다. 선금으로 적잖은 수 쪽의 돈을 준다는데 꺾이지 않을 아마추어들이 얼마나 있겠는가. 요즘같이 약삭빠른 젊은 세대의 주판알 튕김에는 세대 차이라고만 탓할 수 없다.
그래도 기대했던 차 선수는 결국 어젯밤 전화 한 통으로 간단히 뒤돌아섰다. “송순천 스승님 한 번만 용서하십시오, 저도 좀 더 커야 하겠습니다” 대개 이런 식이 어디 차 선수뿐이었나. 그 전의 강지림 선수도 I.B.F 세계타이틀전이 결정되자 간단하게 엽서 한 장으로 인사를 끝냈다.
“송 코리칸 선수! 너답지 않게 뭐 풀 죽어 있어?” 뒤돌아보니 레슬링 구상기 선수가 샌드백을 가볍게 때리며 웃고 있었다. “다, 그런 거야 우리 뭐 이런 장사 첨 하니?” “나도 후배에게 밀렸어. 이젠 우리 같은 퇴물들은 서서히 퇴장당하는 거야” 도장 앞 잡초 위에 앉아 구 선수가 가져온 소주병을 땄다.
경은짱 선수가 짜장면을 시켜왔다. 셋이 말없이 소주만 들이켰다. 구 선수는 늙어서도 우리 어릴 때 이름을 불렀다. 그것이 오히려 어린 시절 동심을 불러 주어 좋았다. 구 선수와는 1950년 한국체육관에서 머리 빡빡 깎은 애송이 때부터 절친했던 사이었다.
그는 육이오 때 지뢰를 잘못 밟아 오른쪽 세 개의 손가락이 날아갔다. 그 손가락으로 세계대회까지 나가 메달을 메가지에 걸었다. 그의 집념은 불에 달군 망치였다. 1956년 그때는 6.25 직후여서 올림픽 참가조차 힘들었다.
전국 공무원들이 선수들에게 주머니 푼돈으로 모아준 성금으로 겨우 비행기 표를 구해 나갔다. 그로부터 거의 32년 만에 한국에서 올림픽이 열린다니 체육인으로서 그 이상 바람이 무엇이겠는가. 그러나 지금 후배 선수들은 체육 정신보다는 엽전 소리에만 꿈틀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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