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예신문사 회장 강 순 창 글을 쓰고 있는 오늘, 10월 26일은 우리 대한민국 역사에서 아주 각별한 날이다. 정확히 99년 전인 1907년 이날에 안중근 의사가 중국 하얼빈에서 일본 내각 총리대신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했고 그때로부터 70년 후인 1979년 이날에는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김재규에게 시해됐기 때문이다. 안 의사의 의거로 20세기 초 동북아의 역사는 이전과는 크게 다른 양상으로 전개됐다. 하얼빈의 총성을 계기로 일본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대한국'(大韓國:조선)과 중국 두 나라 인민의 공동 투쟁이 본격화됐기 때문이다. 19세기 후반 20여년에서 20세기 초반 10여년까지 안 의사가 살다간 그 30여 년 동안의 시대는 서구 자본주의의 아시아에 대한 지배야욕이 노골화했던 때이다. 그 같은 시대의 격랑 속에서 우리 대한은 꺼져가는 등불이나 다름없었다. 안 의사는 그 등불을 한 몸으로 감싸 지키려 했고 이토 사살은, 무인으로서 생명을 건 우국충정의 구체적 실천이었다. 무인이 아니었다면 우선 그처럼 뛰어난 사격 실력을 갖출 수 없었을 터이고 백주의 대도시 기차역에서 그토록 담대하게 사살을 결행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 안 의사는 큰 무인이었다. 안 의사는 짧은 생애동안 사실상 무인(武人)의 삶을 살다간 분이다. 하얼빈의거 이전부터 연해주 지역의 조선 사람들로 의병을 조직해서 항일전을 벌였고 그 때의 직함도 대한의용군 참모중장이었다는 사실이 이를 말해 준다..일제의 재판으로 순국(殉國)하기까지 그가 여순 감옥에서 쓴 ‘옥중자전’(獄中自傳)은 그의 사상체계가 무인으로서의 순수한 사색과 깊은 고뇌의 소산임을 어렵지 않게 일깨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어떤가. 그는 전형적인 무인 출신이다. 군인은 다른 말로하면 공직자가 된 현대의 무인이라는 뜻이다. 장군의 신분으로 군사혁명을 주도해서 집권했지만 그의 정신세계를 지탱해 온 것은 본질적으로 안 의사와 다름없는 우국충정이었다. 그의 시대가 끝난 후 4반세기가 훌쩍 지난 지금에도 우리 사회에서 이른바‘박정희 향수’가 수그러들지 않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우리는 너나없이 지금 정파와 지역과 세대와 이념의 차이에 관계없이 자문(自問)해야 한다. 박정희 시대 18년이 없었다면 세계 11위권 경제대국 대한민국이 가능했겠는가. 그의 ‘독재’로 밀어 붙였던 한·일 회담 ,월남 파병이 없었다면 경부 고속도로, 포항의 제철, 울산의 조선 등 ‘산업화’가 성공할 수 있었겠는가. 수출 2000억 달러, 개인당 GDP 1만6000달러를 달성할 수 있었겠는가. 지금 동북아의 정세는 안 의사의 시대와는 성격과 양상이 다르기는 하지만 격동이라는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국들의 패권 다툼이 노골화하고 있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그 격랑위에서 방향을 잃고 표류하는 형국이다. 무엇보다도 안보는 뿌리 채 무너져 가고 경제는 불안이 누적돼 가고 있다. 새삼 우리의 근· 현대사에 큰 족적을 남긴 두 분 무인을 추모하게 되는 오늘이다. <저작권자 ⓒ 무예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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